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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y 13. 2020

도착은 또 다른 출발이다

영화 '그래비티' 속 인생의 이야기


*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우주 비행사의 우주에서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 '그래비티'는 영화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이미 우리가 익히 봐온 설정들이 많이 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는 이야기, 재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스릴. 하지만, 그러한 비슷한 설정들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이 이 영화의 장점을 가리진 않는다. 이 영화는 우주라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한 사람의 행동과 그 행동에서 비롯되는 감정, 영화의 기술력과 다양한 효과들의 조화가 너무나도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결코 순한 영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표층의 이야기가 평면적이라도 그 속의 심층의 이야기가 입체적이라면,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이 쏟아지더라도 이야기와 부합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면, 비록 자극적인 씬과 설정이 없더라도 인물의 감정이 공감되도록 연출됐다면, 아무리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결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이 영화는 두고두고 알아둬야 할 명작이 아닐까 한다.   

      


힘을 잃은 사람



 우리들은 언제나 움직인다. 일을 하기 위해 대중교통과 자가용을 이용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에 간다. 출발점은 자신의 집이고, 도착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장소다. 이렇게 우리가 집에서 나와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목적"이라는 동기와 행동하려는 의지, 그리고 실천력이 필요한데, 그 의지와 목적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데도 가려하지 않는다.


 의지가 부족하고 무기력함이 가증될수록 가장 개인적인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거나, 의미 없는 움직임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끝내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지쳐 잠이 들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기력해지고 살아가는데 의미가 없어질 때, 문득 다른 생각이 들게 되고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변화를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가진 감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최대한 힘을 아낀다. 결국 자신은 더 고요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다 지쳐버린 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다.

 사람은 집단에 속해있다. 일이든 취미든 개인적인 공간에서 혼자 있는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서 만큼은 사람과 집단에 속하려고 애를 쓴다. 자신은 혼자가 편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여야만 보이는 자신의 모습, 혼자여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좋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결국 혼자여야만 자신의 마음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래비티'의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인 어린 딸을 잃고 홀로 무기력한 생활을 해온 인물이다.
 남편도 없이 지내야 했던 그녀에게 딸은 소중한 존재였다. 딸이 있었기에 외로움을 덜 수 있었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결국 라이언에게 딸은 삶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생명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녀의 곁에서 떠나버리자 라이언의 삶의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고통스럽고 야속하고 슬프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라이언은 세상과 단절하기를 택했다. 자신과 얽혀있는 관계를 차단하고,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고, 철저하게 자신 혼자만 있기 위해 노력했다.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의 노력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었다. 사람이기에 있어야 했고, 그곳에서 태어났기에 살아야 했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지구(집)를 떠나 우주(밖)로 나오기로 한다.



구원이 되어준 대화



 조용한 우주 속에서 라이언과 '코왈스키', '카리프'는 무중력의 상태로 임무를 수행한다. 그 속에서 코왈스키는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정말로 사적이고, 지금의 임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잡담' 수준의 이야기다. 심지어는 코왈스키 본인도 기억을 못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주변 사람들이 "그 얘기는 이미 했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수다스러움은 엄청나다. 그 속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라이언은 코왈스키에게 잠시 음악 좀 꺼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코왈스키에게 문제 있는 것일까? 다분히 수다스러움이 문제일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시간이 흐르고, 이들에게 커다란 사건이 생긴 뒤, 라이언과 코왈스키 이 두 사람만이 우주에 남게 되었다. 그 절박한 순간에도 코왈스키는 계속해서 라이언에게 묻는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지구에서 너를 기다리는 사람은 있는지, 남편은 있는지, 즐겨 듣는 노래는 무엇인지. 너무나도 개인적인 질문들 뿐이다. 그에 대한 라이언의 대답은 언제나 짧을 뿐이다. 이미 우주선의 파편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긴 탓에 안 그래도 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코왈스키의 물음들은 그녀에게 가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질문들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코왈스키마저 떠나게 되자 라이언은 그의 수다스러움이 결코 불편한 잡담이 아니였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없고, 심지어는 소리도 없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고작 세명뿐인 지금의 환경에서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그녀는 뒤늦게 알아차리게 다. 코왈스키는 그러한 우주의 환경을 너무나 잘 알았고, 자신이 했던 말을 또 할 정도로 자신의 곁에 있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쉬지 않고 말을 했던 거였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우주에 있으면서 가장 좋은 게 뭐야?"


"이봐 라이언, 대답해봐."


"내일이면 너의 모험담을 말하고 있을 거야."


"가기로 했으면 움직여야지."


 그녀에게 소리란 필요치 않은 부속품과 같았다. 지구에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철저하게 사람과 소리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고요함을 얻기 위해 우주에 나온 그녀인데, 이제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우주의 고요함이 주는 정적에 휩싸여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어떻게든 소리를 듣고 싶고, 누구든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라던 그녀에게 지구에서 들려오는 '아닌 강'이란 남자의 소리들은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서야 지구의 삶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떠나간 자신의 딸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거처럼 드라이브를 하며 음악을 듣고, 나무를 보고, 집에 들어가는 일상을 느낄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녀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도착은 또 다른 출발이다



  과거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자신의 환경을 바꾼 사람은 끝내 달라지지 않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한탄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어 하지 않은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안에도 그 누구보다 강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라이언의 눈 앞에 코왈스키가 나타난다.


 코왈스키의 등장에 당황한 라이언이지만, 그에게 계속해서 어떻게 왔는지 묻는다. 대답은 간단했다. "제트 엔진에 연료가 남아있었어." 이렇게 쉽게 사람의 생존을 표현하다니.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의 곁에서 떠난 사람이 돌아와 당황스럽기만 한데, 코왈스키는 계속해서  이언에게 집으로 돌어가자고 재촉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연료도 남지 않아 몇 시간째 한 자리에 정착 중인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때, 코왈스키는 말한다.


"착륙용 엔진이 남아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착륙이잖아요."


"착륙도 발사와 같아"


 그리고 계속해서 반박하는 라이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냥 다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거야. 하지만 기로 했으면 움직여야지.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딸을 잃은 고통은 크지만 살아가야지. 이봐, 라이언."


"네..."


"집에 갈 시간이야."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착륙도 발사와 같다.' 어딘가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의 생활에서 이 역설적인 해법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딘가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만이 삶이고, 인생이 아니었다. 출발하고 목적지에 도착해 마무리가 된다면 그 이상의 발전도, 그 이상의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출발하고 도착함으로써 목적을 이뤘다면, 다시 그 목적지는 출발점이 되어 새로운 삶의 발판이 돼야 한다.


 라이언의 간절함이 코왈스키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닿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딸을 잃은 순간부터 시작해 자신은 가장 어렵고 슬픈 삶을 살고 있던 거였다. 딸을 잃은 순간이 출발지가 되어 지금 이 순간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출발할 때다. 지구에서 발을 떼고 드넓은 우주에 발을 딛었다면, 이제는 우주에서 발을 떼고 지구에 발을 디딜 차례다. 그리고 지구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경험한 생존의 험담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에서 목숨을 걸고 우주를 떠돌던 사람은 마침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새로운 목표를 얻게 되었고, 다시 한번 살아가기 위해 가장 위험한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드라이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발을 딛고 일어나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너무 뜨겁고, 어지럽고, 아픈 순간이지만, 그 끝에는 시작이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드디어 드라이브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잘 왔는지, 내가 꿈꾸던 목적지가 맞는지. 그리고 눈물이 흐른다. 자신의 생존에 대해 기뻐하듯이, 또 그동안 느껴온 고통에서 벗어난 희열에 흐느끼듯이. 그렇게 두 발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모습 뒤로 한 서린 여성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마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된 한 사람의 인생을 찬사 해주듯이 말이다.




 영화 '그래비티'는 앞서 말했듯 평범한 상자에 담긴 귀중한 물건과 같다. 영화로서 보이는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도, 그 속에서 우리에게 해주는 조언은 가장 크게 와 닿았다.


 눈앞이 캄캄해 앞이 보이질 않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될 때, 머릿속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 빠르고 격렬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게 할  해법이 생각나게 되고, 그 속에서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람의 인생이 결코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고 말해줬고,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는 가장 큰 기회가 있다는 걸 말해줬다. 중요한 건 지금의 선택에 새로운 출발이 있다고 말해줬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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