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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Nov 01. 2020

소통을 통해서 화합하다

영화 '컨택트'가 주는 소통의 중요성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에너미',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감독의 영화 '콘택트'는 언어가 생각의 틀을 형성시키고, 사고의 차별점을 만들어낸다는 주제를 다룬 SF 영화다. 언어의 활용과 외계인과의 조우라는 독특한 조합과 더불어, 이 영화는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마주했음에도 시종 차분하고 진지하게 극을 이어가기에 나로선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꽤나 신선한 스토리의 영화였다.


 외계인의 등장 이후 두 종족 간의 관계는 대립이 있을지언정 무력이 아닌 대화를 원하고 있고, 언어의 활용을 인류 문명 간의 교류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외계 문명과의 소통의 도구로서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참신했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생각만을 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면서 중요하다.


  영화가 이 시기에 개봉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을 갈망할 때 영화와 매체들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낸다. 그 매체들은 가장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건네지만, 그것을 온전히 공감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기에 지속적이고 직접적으로 우리의 주위에 나타난다. 영화가 오락적인 측면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처럼 사회를 관통하는 주제를 품고서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만들어진 영화들도 필요하며, 중요하다.

 이 영화가 언어를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언어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또한 그 언어의 활용을 누군가에게 적용하는지를 유심히 본다면 단순하지만 교훈적인 의미를 깊게 내포하고 있는 영화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혼란



 영화는 시작부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 세계 12곳의 지역에 '셸'이라는 우주선이 나타나자, 나라를 불문하고 인류는 전례 없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쩔 줄 몰라한다. 정부는 대피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인류의 눈앞에 나타난 우주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셸이 나타난 국가들의 정부는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민간인들은 그저 속이 탈뿐이다. 미지의 존재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고,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질서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들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집단은 외계인의 등장이 인류의 멸망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며, 누군가는 무기를 들고 싸우자고 한다. 언론과 개개인의 대화는 온통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들 뿐이며, 이를 해명, 설명해 줄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에 괴로워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그 문제가 언젠가는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지금 자신이 처한 일이기에 해결방안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일부의 사람들은 정보를 은폐하고, 관련 기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서로에게 문제를 떠맡기기 바쁘다. 결국 정보와 문제의 해결을 원하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얻게 되고,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건 기관이 아닌 자신 스스로라는 의식이 생김으로써 질서가 사라지고, 통제되지 않은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언어가 담고 있는 고유성



 영화의 주인공이자 언어 학자인 '루이스'는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움과 동시에, 외계인에게 지구의 언어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란 특정 집단의 사고방식, 문화 등 그들의 고유한 특성이 담겨있는 수단이기에, 인간이 외계인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외계인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반대로 외계인들에게 지구의 언어를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외계인을, 외계인은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게 루이스의 의견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루이스가 외계인과 소통을 강조하며 인간 언어의 기초들을 외계인들에게 알려주려 할 때, 그녀를 섭외한 '웨버 대령'은 루이스의 의견에 대해 탐탁지 않아 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한정적이었고, 외계인들에게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루이스가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넨다.



"1770년도에 제임스 쿡 선장의 배가 호주 해안에 좌초되었어요. 거기서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선원중 하나가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동물의 이름이 뭐냐고 묻자 원주민은 '캥거루'라고 말하죠. 그때까지는 선원들이 '캥거루'의 뜻이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인 줄 몰랐어요. 의미가 잘못 전달되지 않으려면 서로의 언어를 익히는 방법을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열 배는 더 오래 걸릴 거예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루이스는 이 '캥거루 일화'의 원주민들과 선원들 같이 로의 언어를 모름으로서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수정되지 않은 채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자리 잡아 전 새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해의 과정이 복잡하다 할지라도 단 하나의 단어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아닌, 다양하고 다채로운 언어와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타인의 언어에 대한 이해와 그를 통한 소통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Zero Sum 눈과 귀를 막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인 두 집단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투게 될 때, 어느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은 불이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우리는 '제로섬'(Zero Sum)이라 부르는데, 흔히 국가 간의 전쟁과 개인 간의 게임 대결 같이 두 집단 간의 대립 상황에서 생기는 결과가 이에 해당된다. 목적도 같고, 이들이 손에 넣어야 할 대상도 같지만, 이 두 집단은 그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점의 차이, 즉 자신환경의 차이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컨택트에서도 이 제로섬의 논리가 명확하게 담겨있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공권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복종'이라는 명분으로 모인 군인들 마저도 그 속에서 외계인의 대한 불안감으로 인하여 독단적인 폭력행위를 서슴없이 행하고 만다. 심지어는 12개의 국가들 중 중국이 외계인의 언어에서 '무기'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경계태세를 취하면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요청한다.


 이처럼 외계인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는 패닉에 빠지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법을 모색했음에도, 각각의 집단과 개개인들은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안위를 우려하여 규칙을 위반하는 제로섬의 행위들을 일삼는다.


 영화의 모습과 같이 단체의 문제임에도 일부의 개인들이 보이는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행위들로 인해 사회는 계속해서 문제를 겪게 되고, 해결방안을 만들어 냈음에도 쉽게 사용하지 못한다. 정작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때는 철저히 묵인하면서, 일부의 힘 있는 개인이 움직이면 다수의 목소리가 오히려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내가 얻어야만 만족할 수 있고, 남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잔인한 사회 흐름이 아무렇지 않게 형성됨으로써, 현재의 우리는 그 속에서 피해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런 식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채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제로섬으로 생겨버린 이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고, 그 혼란에 지친 이들은 계속해서 외면할 것이다.



벽을 허물고 새인류를 맞이하다



 겁에 질린 군인들이 폭탄을 터뜨린 순간, 외계인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을 뿌려놓은 채 사라져 버렸다. 이전에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표현만을 내놓던 이들이 위기의 순간에서는 다급하게 여러 가지를 내놓으면서 이를 지켜보는 루이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시험에 들게 했다.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패턴이 보이질 않는 상황에서 급기야 중국은 외계인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다른 국가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외계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던 각국의 전문가들도 정부의 선언에 의해 모두 모니터를 꺼버린 상황. 외계인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더더욱 폭력적이고 난폭해지며, 제로섬의 틀에 갇혀 이성을 잃고 나의 안위만을 바라보고 있다.


 루이스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혼란에 대해 알고 싶고, 외계인들이 지구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싶어 졌다. 고민 끝에 루이스는 외계인들의 우주선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들은 루이스에게 손을 내민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루이스가 그들의 손을 잡고 올라선 곳은 외계인들의 우주선 내부였다. 인류가 두려워하던 외계의 존재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공간이며, 지금까지 벽을 두고 바라만 보던 존재를 벽이 없이 마주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마침내, 루이스는 인류 최초로 벽을 허물고 눈앞에서 외계인을 마주하게 된다.

 문명과 문명이 조우하고, 문화와 문화가 섞이게 되며, 종(種)과 종이 만나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루이스는 깨닫게 된다. 지금 인류가 해야 할 것은 벽을 새우고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벽을 허물고서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언어로 인해서 형성된 가치관은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나라의 원동력을 만들어낸다. 언어가 다르다면 자연스레 소통의 장애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내가 모르는 상대방에게 마음의 벽이 생기고 만다. 현재의 지구촌은 그러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


 루이스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외계인에게 적대심을 품고 있는 중국의 '샹 장군'에게 그 벽을 허물수 있는 '언어의 힘'을 발휘한다. 샹 장군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남긴 유언.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남긴 '언어의 힘'. 루이스는 외계인에게서 얻은 언어의 힘을 발휘하여 지구가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해 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렇게 샹 장군은 루이스가 보여준 '힘'에 의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외계인에게 손을 내밀어줬으며, 인류는 언어의 힘이 보여준 화합의 기적을 바라보며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외계인이 인류에게 건네준 언어의 힘은 종을 뛰어넘어 한 세계를 하나로 합칠 만큼 강력했다. 인류는 그 힘을 이용하여 마침내 벽을 허물게 되었고, 다시 한번 위기를 넘기고서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 일의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며 자신 갖고 있는 오해와 불신을 풀어냄으로써 화합을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공식은 마치 쓰디쓴 약을 거부하듯이 쉽사리 이용하지 못한다. 내가 갖는 가치관이 상대방의 존재를 규정하고, 자신의 환경이 만들어낸 자신의 특징을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이와 같은 '제로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 무엇도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상을 얻어내야만 하고,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다는 잔인한 보상심리가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력을 불러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외면할 것이다.   


 제로섬의 의식은 인류의 역사를 거쳐 이어져오고, 인종을 넘어선 공통된 의식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봤더라도, 누구도 달라지려 하기보단 자신 역시 그렇게 이득을 보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것은 기어코 다시 잃기 마련이다. 제로섬은 혼란을 막아내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해 내기 위해서는 나의 의견만을 중시해선 안된다. 내 의견과 더불어 상대방의 의견까지 포용해야지만 해결할 수 있다.


 '마이너스(-)'를 상쇄하려면 '플러스(+)'가 필요하다. 이해를 기반으로 소통을 해야 하고, 조건적인 도움이 아닌 무조건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인류의 공통된 목적인 평화를 이뤄내기 위한 공식은 '제로섬'의 공식이 아닌, '제로섬이 아닌'(Non Zero Sum) 공식이다.  


 인류는 제로섬의 의식에 사로잡혀서 만들어진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위하여 서로에게 배려하고 선을 실천하려는 의식을 강하게 자리 잡아야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이 더 올바르게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렇게 정리된 쳬계 속에서 서로 화합하 도움으로써 새로운 인류를 맞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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