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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Apr 06. 2021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영화 '소울'이 우리에게 준 위로


 *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번 다양한 주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우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모두가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줬다. 이번에 소개하는 신작 '소울'도 그러한 픽사의 성질을 이어간 작품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픽사의 작품들 중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와 조언을 해준, 고마운 영화라 생각한다.


 이 영화가 다른 픽사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메시지가 직접적이면서 보편적인 탓에 짧은 소개로도 이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와 결말을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픽사 영화들의 강점 중 하나인 친근함과 창의성의 영역이 잘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판타지적인 이미지들이 우리들에게 관람의 재미와 더불어 감상으로서의 여운을 동시에 주기에, 익숙하지만 또 다른 새로움의 체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미지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지는 픽사의 작품들 중,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가장 확실하게 내 가슴속에 와닿았다. 픽사의 영화들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내온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우리들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픽사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픽사의 영화들에게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는 이상을, '22'는 현실을



 영화 '소울'에 등장하는 '조'와 '22'는 서로 상반된 성향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조는 계속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주저고, 새로움을 두려워하는 22는 변화를 피해 다니며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조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과 이상을 쫓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재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재즈를 온몸으로 연주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알아주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치이고 부딪히면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재즈 연주를 포기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조에게 재즈는 삶의 목적이고, 전부다. 그런 그에게 재즈를 포기한 삶이란 무의미함 그 자체였다. 조는 재즈 하나만으로도 사랑과 이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기에 비록 자신의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는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다.


 22는 인류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만들어진 영혼들 중 22번째로 태어난 존재다. 그렇게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멘토들을 만나며 인간의 삶을 배워가지만, 그에게는 지구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었다. 위인이라는 인물들이 22에게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는 지구로 갈 마음 자체를 가지지 못했고, 인간으로 살아갈 의지 자체를 잃어버렸기에 그 어떤 말들로도 22를 설득하고 격려해주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22에게 새로움이란 결국 두려움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울 테니, 애초에 시도조차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그런 마음이 그를 위축되게 만들었지만, '나는 무서워서 못해'라는 마음을 '나는 하기 싫어서 안 해'라는 마음으로 덮어버리면서 그 누구에게도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써 강한 척하며 외부와의 벽을 쌓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척이나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존재가 된다.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한 중년의 인간 남자는 왜 이렇게 삶에 집착하고, 꿈을 이루려고 발버둥 치는 걸까. 왜 이 영혼 인간의 삶에 관심이 없고, 태어남을 회피하려는 걸까.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고,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까.



물과 바다



 "젊은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가 물었어.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지. '여기가 바다잖아.' 그러자 젊은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는 물이지 바다가 아니잖아요. 제가 찾는 건 바다라고요.'"


 조가 그토록 원하고 이루려 했던 '도로테아 윌리엄'과 합주를 마친 뒤, 텅 빈 마음을 가지고 도로테아에게 말한다.


"이게 제가 그토록 원하고 그리던 순간인데, 상상하던 기분과 좀 달라서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 말을 들은 도로테아가 조에게 한 말이 바로 시작 부분에 적은 젊은 물고기에 대한 내용이다. 젊은 물고기는 자신이 꿈꾸던 바다를 마침내 마주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이 바다가 아닌 작은 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물고기가 평생을 살며 바라던 것은 '바다'라는 거대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인데, 막상 그 순간을 마주하자 그에게 돌아온 건 이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같은 바다를 마주해야만 한다는 '허무'였던 것이다. 조 역시 젊은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열정적인 연주가 끝나고 불이 꺼진 건물을 바라보며 허무감을 느꼈것이다.


 그 지점에서 도로테아가 에게 건넨 말의 의미의 가치관을 바꾸는 한 마디로 작용한다. 바로 인생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과 바다는 가치관과 시점의 차이일 뿐, 자신이 작디작은 물이라는 공간에 있음에도 자신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그곳은 곧 바다가 될 것이고, 아무리 넓고 장엄한 바다에 있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결국은 그 바다도 작은 물 웅덩이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 말을 들은 조는 넋을 잃은 표정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실은 지하철 속에서 차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 바라던 인생의 불꽃은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장르였을 뿐이었는데, 그 장르가 자신의 눈앞에서 지나쳐 등 뒤로 넘어가자, 자신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옷 주머니에 담겨있는 22의 추억들을 꺼내본 그는 비로소 자신이 놓쳤던 더 넓은 시야를 발견함으로써 진정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수평의 안정 속에서 수직의 성장을 이루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꼭 성공해서 높은 곳에 올라가라.' '성공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이 '성공'이라는 단어는 어른 되면서 점차 '행복한 미래의 모습' 보다는, 인생의 만족감을 얻기 위한 마지막 목표이자 도착지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 '안정'이란 단어는, 현실에 만족하며 노력보단 지금의 상황에 머무르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삶을 낭비한다는 이미지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식과 가치관이 다르듯이, 누군가는 높은 빌딩을 오르며 높은 직위의 직업인이 되기를 희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힐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달리는 그 순간을 즐기길 바랄 것이다. 영화 '소울'에서 주인공인 조와 22가 그랬듯이, 사람들이 가질 인생의 가치관은 다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도 모두 다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조가 마주하는 '유 세미나'에서는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들을 돕는 인생의 멘토들이 등장한다. 그 멘토들은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이들은 끝없는 노력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위인들이 유 세미나에서 새로 태어난 영혼들에게 '당신의 전당'을 보여주며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인생의 목표를 정해서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위로 올라가라는 말일 것이다.


 꿈과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여 위대한 사람이 돼라. 어쩌면 이는 인류가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새겨 넣은 일종의 무의식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제리'가 말하듯, 이 영혼들이 가질 불꽃은 인생의 꿈과 목적이 아닌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마음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멘토들은 모두가 그 목적만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조는 의문을 갖게 됐다. 자신이 살아오며 배워온 것이 꿈과 목적, 수직으로 성장하기 위한 동기들을 갖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기초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렇게 조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 도로테아와의 협업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삶이란 어느 한 지점에 높이 도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됐고, 22의 말을 통해서 인생의 매 순간을 마치 가볍게 길을 걷듯이, 즐기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평지 위에서 자신의 얼굴로 바람을 느끼고,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풍경을 보며, 귀로 모든 소리들을 경청할 것이다. 조는 이제야 진정으로 안정을 되찾음으로써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뤄냈다.




 조와 22는 자신이 몰랐던, 자신이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행복을 배워나갔다. 조가 몇십 년의 삶 동안 보고 듣고 배워온 지식과 경험도, 22가 몇 세기 동안 유 세미나에서 지내며 갖게 된 삶에 대한 두려움도 모두 두꺼운 막에 싸여 다른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과거의 자신이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이 잘못 생각해 왔었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다시 한번 더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렇게 영화는 삶의 매 순간을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주제는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주제다. 다만, 그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기에 영화 속 조가 그랬듯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뿐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우리들에게 하루를 즐기며 살아가라는 말을 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몰라서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알려주려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들의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이 주제를 우리들에게 건네줌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고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한 것이다.


 지금도 어느 누군가는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고, 어느 누군가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피와 땀을 쏟으며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주제를 잊어선 안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고, 우리를 가장 따뜻하게 감싸줄 위로가 될 것이다.    


 매 순간을 즐기는 것. 아주 잠깐의 시간이더라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를 위해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생각을 잊지 말자.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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