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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un 29. 2022

삶에 대한 두려움

영화 '소울'이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



* 영화 '소울'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소울'은 우리들에게 인생이 '목표'라는 어느 한 지점에서 끝나지 않고,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새로운 삶의 연속이며 소중하다고  말해준다. 목표가 있으면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을 통해 결과를 이뤄내는 우리의 삶에서, 목적을 이뤄낸 뒤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목적만을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한차례 다뤘었던 '소울'에 대한 리뷰에서는 조가 얻어낸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내가 진정으로 공감했던 건, 조가 느낀 삶의 의미가 아닌, '22'가 느껴온 '삶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위인들의 조언을 들으 삶에 대한 따분함을 느낀 22는 계속해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거부했다. 22의 시선에서 위인들의 이야기은 모두 하나같이 "노력해서 성공해라"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쌓여서 22에게는 "아 인생은 저런 거구나."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22가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건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22에게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삶에 대한 의지가 안 생겼는데'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지'


'내가 과연 태어날 가치가 있는 걸까'


 22에게 생긴 삶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가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끝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깊게 파고든 두려움은 두꺼운 막에 둘러싸고 말았다. 이제 22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자신은 애써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 나머지, 위인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춰온 것이다. 이제 22에게는 인간으로서 태어나기 위한 '삶의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영화 '소울'이 보여준 22의 모습은 그 당시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으며, 하루하루를 즐기지 못한 채, 늘 좁은 방에 틀어박혀 멍하니 있을 뿐이다.


 22는 태어나기를 두려워했다.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를 극도로 피해왔던 것이다.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위대한 업적'과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은 22에게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을뿐더러,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삶'과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거부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 모습이 나는 공감이 됐고,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너무 안쓰러웠다. 거울이 아닌 화면에 담긴 그 가녀린 영혼의 방황이 나에게는 남일 같지 않았다.




 내가 일전 '에드 아스트라'[사람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간다.]를 리뷰했을 당시, 내가 느끼고 있던 고민을 섬세하게 짚어준 책 한 권을 읽었다.


 '나리 심리학'이라는 회사의 대표인 '나리'가 지필 한 '당신, 뭐야?'라는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호기심과 약간의 거부감을 뒤로하고 책을 펼쳐보았을 때, 나는 이 책에 빠져들게 됐다. 그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자기 비하와 우울함에 대해 작가 본인의 생각을 재치 있게 다뤄내면서, 우리들에게 작게나마 위로를 건네주고 있었다.

 그중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간다.'아홉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그 상황에 대한 묘사, 그리고 소소하게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잠시나마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을 토대로 나는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영화 속 주인공과 책 속 고민의 당사자, 그리고 나의 상황이 겹쳐 보이면서 '에드 아스트라'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 책'은 소소한 해결책을 제시해준 동시에 작게나마 위로를 해줬으며, 본격적으로 영화 리뷰를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다.


 몇 주전 다시 한번 심적인 불안함이 돋으면서 정신이 아득해졌을 때, 그 책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내 손 안의 의사 선생님과 같은 그 책에게 나는 다시 한번 상담을 요청했다.


"너는 너 자신을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


"노력을 통해서 성장하라는 건가요?"


"아니. 너는 이미 다이아몬드야. 지금도 다이아몬드고. 단지, 네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너를 돌멩이로 깎아내렸을 뿐이란다."


'너는 이미 다이아몬드다'

책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모두 다이아몬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모진 일들로 인해 수많은 상처를 받게 되면서, 다이아몬드는 결국 작은 돌멩이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 적응하기 바쁘고, 그곳에 적응함으로 인해 자신의 본래 가치를 잊게 되면서 내가 아닌 사람이 돼버린다.


 나 역시 내 주변 환경에 동화됨으로 인해서 나의 가치를 잊고 살아왔던 것이고, 22 또한 위인들을 통해 봐 온 지구의 '성공적인 삶의 기준'이 나무나 어려웠기에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자신을 숨겨왔던 것이다.




 22는 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처음 느끼는 감각,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맛보고 맡아보는 맛과 향까지, 모든 것이 낯선 22에게 지구라는 환경은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곳이다. 하지만, 22는 조의 도움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구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됐다. 또한, 조의 모습을 통해 조가 놓인 환경 속에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자신이 직접 조언을 해주면서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22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인간이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 '삶에 대한 불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자신의 가슴에는 하나의 완성된 '통행권'이 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해서 얻게 된 것인지를 몰랐다.

 분명... 분명 22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좋다고 말하지만, 조는 단호하게 그의 의견을 반박했다. 22가 품은 삶에 대한 열망은 22의 것이 아닌, 조의 마음이라는 말에 22는 또 한 번 자신에 대한 깊은 자책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22는 덧없이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속 구덩이 속으로 말이다.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너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



'나는 아직도 삶에 대한 의지가 안 생겼는데'


"네가 뭐라도 될 거 같아?"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지'


" 삶은 무의미해!"



'내가 과연 태어날 가치가 있는 걸까'


"너는 태어날 가치가 없어!"



 22는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마주하며 자신을 추락시키고 만다.


 

 그러던 22를 구하러 와준 건 조였다. 조가 22에게 화를 내며 말한 '삶의 목적'은 조의 머릿속 생각이 아닌, 22의 마음속 간절함이었다는 걸 조는 깨달았다. '도로테아'가 말해준 '바다를 찾는 물고기' 속 물고기는 조 자신이었고, 그 물고기가 깨닫게 될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이 22었다.  

 22는 이미 알고 있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음에도, 그가 뉴 세미나에서 지내온 길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와 모습들을 듣고, 또 봄으로 인해서 외면해왔던 것이다.


이제야 조는 22에게 다가가 말해준다.



"너는 준비가 됐어."



 그리고 22의 손에 풀잎을 쥐어주면서 22는 또 한 번 삶에 대한 목적을 되찾게 된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다이아몬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돌로 변해버렸다는 책 속 작가의 말처럼, 새까맣게 그을린 마음속 아픔 속에 파묻혀버린 22는 조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뒤덮고 있던 아픔과 상처를 털어버리고 비로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돌아왔다.  

 

 지구로 가기 위해 입구 앞에 선 22는 두려움에 망설이고 있다. 그때 22의 손을 잡아준 건 조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존재로서, 조는 새롭게 태어날 22를 위해 기꺼이 손을 잡고 지구로 내려가 준다. 비록 준비된 자의 길을 같이 가줄 수는 없지만, 조는 22의 앞날을 응원해줬다.


 조는 22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깨닫게 됐고, 22는 조를 통해서 잊고 지냈던 삶의 마음가짐을 되찾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가르침을 받았고, 태어나지 않은 영혼은 태어난 존재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가려졌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목적에 얽매인 태도를 내려놓음으로써 '존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다르게 시작'하는 조와 22의 앞날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준 마음처럼 기꺼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22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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