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나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민이 생긴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는 일정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의 고민은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고민을 내 가족에게, 내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생각 외로 금방 해결되는 경우가 생긴다. 분명 나 혼자서는 생각해 내기 어려운 고민이었는데, 내가 아닌 타인의 입에서는 어떠한 결정이 금방 튀어나오곤 한다.
"나도 그 마음 알아, 그럴 땐 말이야..."
"음...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때?"
이러한 조언들이 나에게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복잡해진 내 마음에 더 무거운 돌덩어리를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내가 가진 고민은 내가 살아가는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빠르게 해결책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상황은 어떠할까? 이번에는 내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지인이 고민을 품고 나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해 보자.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상대방, 그 내용을 경청하는 나, 고민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난 뒤 이어지는 정적과 고민하고 있는 나의 표정.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서 명쾌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말해줄 것이다.
"나도 그 마음 알아, 그럴 땐 말이야..."
"음...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때?"
막상 상대방의 고민을 자세히 들어보면, 내가 가져왔던 고민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타인의 고민에 대해서는 지극히 객관적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주관적인 아이러니한 상황. 타인에게 내뱉는 말은 모두 나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지만, 나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고민'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서 번뜻 떠오르지 못한다. 들어야 될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됐다.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사람은 어느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다시 이야기를 하던 사람은 들어야 되는 사람이 됐다. 청자가 화자가 되고, 화자가 다시 청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상한 관계. 누구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