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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Sep 20. 2024

白 도둑맞은 백숙, 다시 찾은 사연  

2024년 9월 20일 한자

여기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혔다가 발견된 작은 그림 한 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중국의 상나라 사람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사람들은 이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왜 하얀색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천 년 동안 논란이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쌀알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태양이라고 한다. 그 외 촛불, 도토리, 사람의 머리, 해골, 엄지손가락 등의 설이 있다. 이 중에서 학자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엄지 손가락'설이다. 모양은 엄지손톱을 그린 것이고 조반월에서 '하양'이 나왔다는 주장이다. 들어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맏 백伯이란 글자가 엄지척에서 나왔다는 설명에서 백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들었다. 과연 손톱의 반월이 순수한 흰색의 상징으로 적당할까? 여하튼 그 날 이후 나는 한동안 백숙白熟을 먹기 싫었다.


이후 나는 빼앗긴 백숙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기존설들에 맞서 고군분투했다. 내가 백숙을 다시 찾도록 길을 인도 해준 것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경배한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다. 왜냐하면 동방 박사들이 아기예수에게 선물한 세 가지 선물 중에서 백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주장이며 이 곳에서 처음 발표하는 것이다. 순수한 흰색의 상징으로 무엇이 좋을까? 그 고민으로 기존 설들을 하나씩 대입해보고 지워나갔다. 그외에도 많은 것들을 대입해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동방박사의 세 가지 선물(황금, 유향, 몰약)에서 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유향이다.

우선 갑골문을 다시 보자. 딱딱한 갑골에 새기다 보니 대부분의 갑골문은 각이져서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중에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세 번째 갑골문을 보라.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 못지않다. 만약 여기에 색을 넣는다면 가장 적합한 물감은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우유빛 유즙이다. 유향乳香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유향을 '레우코토에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레우코토에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헬리오스를 사랑하고 있던 클리티아는 질투에 눈이 멀어 "레우코도에가 아폴론에게 순결을 잃었다" 라며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 거짓말에 아무 잘못도 없는 레우코토에는 아버지에 의해 산채로 매장 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자리에서 유향나무가 나왔다고 한다. 유향나무는 상처를 입으면 눈물방울을 닮은 투명한 흰색 수지가 흐르는데, 이를 상처받은 레우코토에의 눈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레우코토에의 순결한 희생을 상징하는 유향 백白, 그 수지로 만든 향이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께 선물한 유향이다. 영어로는 프랑킨센스Frankincense다. '순수한'을 뜻하는 'frank'와 '향'을 의미하는 'incense'가 합해진 말이다.

유향나무는 홍해 연안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에 자생하며, 이집트, 리비아, 수단, 터기등에 분포해있다. 유향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 나무 줄기에서 채취한다. 칼로 상처를 내면 우유빛 수지白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을 응고시켜 만든다.  그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글자가 일백 백百이다.


   百

갑골문은 칼로 그은 나무의 상처에서 투명한 물방울 모양의 수지가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친절하게도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삼각별도 그려넣었다. 마찬가지로 핍박할 박敀은 손에 도구를 들고 유향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이체자인 핍박할 박迫은, 상처난 유향나무의 고통과 눈물처럼, 갑자기 닥친 전쟁이나 재앙에 의해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수지가 흐르다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어느 순간 멈춰서서 응고되는데, 이로부터 머무를 박泊이 나왔다. 이후 사람이 여행중에 머무르는 '여관'이나 '배를 정박하다'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유향나무와 같이 수지를 흘리는 다른 나무들이 있는데, 이를 나타낸 글자가 나무이름 백柏이다. 이 나무들에서 흘러내린 수지는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가 응고되는데, 백 만년이 지나면 돌덩이처럼 굳어서 옥이 된다. 이중에 푸른 빛깔을 띄는 것을 푸를 벽碧이라 하고, 노란 빛깔을 띄는 것을 호박 박珀이라 한다. 이 때 굳으면서 곤충이 딸려 들어가 화석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이 화석에서 유전자를 채취하여 공룡을 부활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향은 지중해 지방의 원산인 옻나무과의 양유향(Pistacialentiscus)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수지를 말하기도 한다. 이것을 영어로 마스틱(mastic)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양유향(洋乳香)이라 한다. 6월부터 8월 사이에 줄기와 가지에 상처를 여러 개 내면 빠른 속도로 수액이 흘러내려 작은 타원형 방울로 굳어진다. 이 때 흘러내리는 수지는 유리처럼 투명한 연한 황색 혹은 녹색을 띠다가 서서히 검게 변한다. 고대에는 이 수지를 이용해 하인들의 옷감 등을 물들이는데 사용했는데, 이를 뜻한 글자가 검을 조/하인 조皁다. 十은 원래 일곱 칠七과 같은 글자로 칼자국을 그린 것이다. 옻 칠柒자의 七이 그것이다. 칼자국을 낸 옻나무에서 양유향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표현했다.  


유향을 이집트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신의 땀방울'이라 하여 영적 식물로 귀하게 취급했다. 그 중에 흠결이 없는 최고의 상품은 신을 경배하는 제사의식에 사용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도 신전에서 유향을 분향했다. 이로부터 맏 백伯이 나왔다. 원뜻은 고대에 제사를 주관했던 제사장白이며, 후대에는 제사장의 역할을 집안의 맏이가 했으므로 '맏이'란 뜻이 나왔다.


白은 '고하다' 혹은 '아뢰다'라는 뜻도 있다. 흔히 시골에 가면, 담벼락에 붙인 안내나 경고의 글 하단에 써놓은 "주인 백"이 그 용례이다. 원래는 제사장이 신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 제단에 분향했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통은 여전히 오늘날 제사나 사찰에서 향을 태우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향기 향㿝은 유향에 작고 둥근 모양을 뜻하는를 더해 분향할 때, 연기가 몽실 몽실 피어오르는 모양을 그렸다. 구름 운云자에 들어간 厶의 쓰임과 같다. 혼백魂魄에서의 백魄은 나무의 정수精髄인 수지처럼 인간의 정수로서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영이나 넋을 말하며, 넋 혼魂은 사람의 몸에 있지만 몸을 벗어나서 구름云처럼 떠다닐 수 있는 넋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유향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자.

담담할 백怕이 그 효과를 말하고 있다. 사전에 나온 의미는 '담담하다, 담백하다, 편안하다, 조용하다'이다. 한마디로 '심신안정'이다. '두려워하다, 부끄러워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이 때는 '파'로 읽는다. 이 때의 白은 두려움이 생길 때나 부끄러운 상황에서의 하얀 마음 즉 넋이 놀라서 백지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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