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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Oct 08. 2024

무엇이 길한가?

吉을 알아야 吉이 보인다

"立春大吉"

예전에 입춘이 들면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던 말이다. 그런데 그 자원을 살펴보니 에구머니 길하기는 커녕 상스럽기 그지없다. 대문에 남성 생식기를 그린 그림이 떡하니 붙어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길吉은 '좋다, 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자의 자원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집 앞에 세워놓은 남근석을 그린 것이며, 고대 사회의 생식기에 대한 숭배사상에서 '길하다'란 뜻이 나왔다고 한다.

길吉의 초기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실제로 남성생식기를 닮았다. 물론 다른 설도 있다. 위는 도끼모양이며 그 아래쪽은 도끼를 보관하는 통이라는 설이다. 도끼를 통에 보관하는 것은 전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좋다'는 뜻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제사 때 상위에 세우는 신위와 받침대를 그렸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갑골문, 금문 연구로 유명한 시라까와 시즈까는 축문을 담은 그릇 위에 도끼를 얹어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축문 위에 도끼를 둔 것은 주술능력을 봉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길하다'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도끼 설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설이 있다. 청동기를 주형하는 거푸집과 이를 식히기 위해서 판 구덩이를 그렸다는 설이다. 이에 따르면, 거푸집에 쇳물을 녹인 용액을 주입한 후에 흙을 파낸 구덩이에 넣어 천천히 냉각시켜야 제품의 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길하다'라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이렇듯 한자의 자원에 대한 연구는 부단히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글자가 대부분이다. 이에 필자가 새로운 설을 하나 더 추가하고자 한다. 한자 자원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길吉한 소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헬쌍 달구로다

이 집 짓구 삼 년 만에

아들을 나며는 효자를 낳구요

딸을 나며는 열녀를 낳는다

닭을 치며는 봉황이 되고요

가이를 기르면 사자가 된다

송아지 복은 뛰어들고

구렁 복은 사려 들고

제비 복은 날아들고

이광쥐는 새끼 친다."


(집터 다지는 달구소리, 조선향토대백과)


이 소리는 예전에 집터를 다질 때에 불렀던 달구소리의 일부이다.


달구 혹은 공이는 집터나 묘터의 땅을 단단히 다지는데 사용하는 기구를 말한다. 공이를 만들 때는 남성 생식기를 본뜬 형태로 만들었다. 이는 음양 사상에서 땅을 음(陰)으로 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양(陽)의 상징물인 남성 생식기로 땅을 다스려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음양의 조화를 통해 집안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吉     (석저,국립중앙박물관)  (달구, 진주토지 박물관)


길할 길吉의 윗부분이 바로 남성 생식기를 본뜬 공이(石杵)를 그린 것이다. 그 아래 구는 달구 소리를 뜻한다. 달구 소리의 사설 내용은 다양하지만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주로 집의 터가 풍수적으로 길한吉 곳이라서 발복할 것이라는 덕담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부터 '길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달구질로 집터를 다질 때는 먼저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복과 무탈함을 빌었는데 이를 빌 고祮라고 한다.

달구질은 무거운 돌을 밧줄로 묶어(結맺을 결) 공중으로 들었다가 내려 놓는 반복 작업을 장시간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달구질을 전문으로 하는 일꾼들이 있었다. 힘센 장정들 수십 명이 한조를 짜서 움직였는데, 이들을 건장할 길佶이라고 한다.


한편 달구질은 무거운 달구를 여러 사람이 함께 다루는 일이므로 서로 간에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다칠 수 있다. 그러므로 힘을 쓸 때는 호흡을 맞추며 조심해야 하는데 이를 삼갈 할이라 한다. 일꾼들이 작은 목달구를 손에 잡고 땅을 다지는 모습을 일할 길拮이라고 한다. 이런 목달구는 주로 묘터를 다지거나 두더지를 쫓을 때 사용했다.


그 모습이 마치 죄인을 매질하는 모습 같이 보인다고 해서 핍박할 갈拮이라고도 한다. '힐난하다'라고 할 때의 물을 힐詰도 같은 자원에서 나온 글자이다. 달구질하듯이 죄인을 매질하며 심문하는 것을 말한다.  


달구는 재질에 따라 목달구, 석달구, 철달구라 부른다. 이 중에 석달구를 견고할 할硈이라 하고, 철달구를 삐걱거릴 길銡이라 하며, 목달구를 매달고 있는 도르래를 두레박틀 길桔이라 한다.


도라지나 두레박틀을 뜻하는 길桔은 원래 목달구를 뜻한 글자였다. 달구질을 할 때 특별히 더 단단하게 다져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주춧돌 놓는 자리다. 주춧돌은 기둥을 받치기 때문에 기초가 단단하지 않으면 집이 기울게 된다. 따라서 주춧돌 자리는 특히 무거운 달구를 사용했다. 이 때 일꾼들의 힘을 덜기 위해서 도르래를 사용했는데 이를 길桔이라 했다. 목은 도르래를 받치는 나무 혹은 목달구를 가리키며, 길은 도르래에 매달린 무거운 달구를 뜻한다. 후에 그 모습과 흡사한 우물에 설치한 두레박틀을 뜻하게 되었고, 나아가

'길(吉)'이라는 소리를 음차하여 도라지 등의 나무를 뜻하게 되면서 본래 의미를 잃었다.


달구질로 집터를 다질 때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깨끗한 물(洁깨끗할 결) 또는 소금물을 뿌렸다. 특히 사리에 밝은 자(喆밝을 철)는 여러 번의 달구질로 땅을 단단히 다졌고, 영리한 자(黠약을 할)는 나뭇가지를 태운 재黑나 짚(秸짚 갈) 을 땅에 묻기도 했는데, 이는 나무좀벌레(蛣나무좀벌레 길)등의 해충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서,『임원경제지』는


“집을 지음에 있어서 기초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마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여유 있는 집에서는 번다한 비용을 아끼지 아니하고, 혹은 숯을 가지고 다지고, 혹은 소금을 가지고 다지면서..."


라고 하였다. 또 기초다지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무릇 집을 건축함에 있어 먼저 건물 세울 땅을 살펴 정한다. 그리고 큰 나무 절구를 가지고 사방을 빙빙 돌아가며 두루 다진다. 땅이 이미 굳고 단단하게 되었으면 다시 주춧돌 놓을 곳을 살펴 정한다. 그리고 말구유 형상과 같이 곧게 땅을 파는데 깊이는 반 길 정도가 좋다. 먼저 굵은 모래를 일곱 내지 여덟 치 채우고 물을 많이 뿌린 다음 나무달구로 여기저기 세게 다진다. 달구머리에서 땅땅 소리가 난 뒤에야 비로소 손을 멈춘다. 그런 뒤 다시 모래를 붓고 물을 뿌린 다음 앞에서와 같이 다져 나간다. 대략 반 길의 깊이라면 반드시 예닐곱 차례로 나누어 다져야만 비로소 돌처럼 견고해진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무리의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빌 고)

마당에는 건장한 사내( 건장할 길)들이 빙 둘러섰는데

그 가운데에는 송이버섯 같이 생긴 달구가 놓여있다.


잘록한 목에는 여러 방향으로 놓인 밧줄에 매였고(結 맺을 결) 

줄끝은 사내들의 손에 들려있다


에헬쌍 달구로다

사내들이 메나리토리 장단에 맞춰 노래하며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劼 삼가 할/애써 일하다, 부지런하다)


그 소리 가만히 들어보니

땅의 터가 곤륜-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길한吉 명당이라 한다.


철달구는 삐걱대고(銡 삐걱거릴 길)

견고한 석달구는(硈 견고할 할) 

쿵쿵쿵

두려운 심장소리로 대지를 울린다(恄 두려워할 길)


달구를 들었다가 내리치는 사내들의 모습은

죄인을 매질하며 핍박하는 것 같고(拮 일할 길/핍박할 갈)

목청 높여 부르는 달구소리는 죄인을 다그치는 소리 같다(詰 물을 힐)


사리에 밝은 자는 여러 번의 달구질로 땅을 단단히 다지고(喆 밝을 철)

영리한 자(黠 약을 힐)는 나뭇가지를 태운 재나 볏 짚을 넣어

나무좀벌레를 막았다.


공중으로 솟구쳤다 떨어지는 달구의 모습이

사람이 길을 걷는 것 같고(㣟 가는 모양 길)

화가 나서 급하게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 같다(趌 성내어 달릴 길/뛰는 모양 결)


에헬쌍 달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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