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 Oct 09. 2024

정직함과 솔직함의 차이

率을 모르는데 어떻게 솔직할 수 있어? 

올림푸스 12신 중의 하나인 헤르메스는 도둑과 떠돌이(나그네, 상인)들의 신이자 전령의 신이다. 그는 어느 날 제우스 신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강 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한 남자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남자의 사정은 이랬다. 


남자는 가난한 나무꾼이었다. 너무 가난하여 가진 것이라고는 도끼 한 자루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도끼를 그만 실수로 강물에 빠뜨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엉엉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헤르메스는 강물 속으로 들어가서 금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이 금도끼가 네 것이냐?" 


나무꾼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것은 제 도끼가 아닙니다."


헤르메스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이번에는 은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은도끼가 네 것이냐?"


이번에도 나무꾼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헤르메스는 다시 물속에 들어가 낡고 녹슨 쇠도끼를 들고 나왔다. 


"그럼 이 낡은 쇠도끼가 네 것이란 말이냐?"


"네! 그 도끼가 바로 제 도끼입니다."


이에 나무꾼에게 감동한 헤르메스는 쇠도끼는 물론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상으로 주었다.


이솝우화로 잘 알려진 이 신화에서, 나무꾼의 말은 

정직한 것일까, 솔직한 것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정직(正直)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이라고 하였고,

솔직(率直)은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라고 하였다. 


정직은 꾸미지 않는 것이고, 솔직은 숨기지 않는 것일까? 


한자의 자원에 따르면, 오히려 꾸밈과 숨김이란 두 단어를 서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직은 법과 도덕의 영역이다. 거짓이란 단어와 어울린다. 하지만 솔직은 거짓이나 숨김보다는 오히려 '꾸밈없다'와 더 잘 어울린다.  

       正                         直


바를 정正의 갑골문은 성을(圍) 향해 곧장 나아가다(止)를 뜻한다. 원래의미는 '정복(征服)'이다. 군대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즉 정복의 정당성에서 '바르다'란 뜻이 나왔다.  

곧을 직直의 갑골문은 눈의 위쪽 한가운데에 세로획을 더한 형태이다. 눈동자가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에서 '곧다, 바르다'란 뜻이 나왔다. 그러므로 


정직正直은 행위나 성품이 정당하고 바름을 뜻한다. 


거느릴 솔率의 갑골문은 가는 실糸의 좌우로 여러 개의 점()을 찍어놓은 모양이다. 여기서 멱은 대마의 껍질을 가늘게 쪼개어 꼰 실을 뜻하고, 그 주위의 작은 점들은 잿물에 익힌 삼실에서 겉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솔직하다'에서의 솔率은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일까? 

솔직에서의 솔率은 '꾸밈없다'를 뜻한다. 베 중에서 순수함의 상징은 비단錦이다. 거기에 비해서 거칠고 누런 색의 삼베는 소탈하기 그지없다. 특히 자연친화적으로 생산한 생포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그런 이유에서 솔率은 '꾸밈없다, 소탈하다'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정직正直은, 법과 도덕의 잣대로 평가할 때, 행위나 성품이 정당하고 바름 뜻하고,

솔직率直은, 있는 그대로를 꾸밈없이 바르게 드러내는 뜻한다. 


그렇다면, 나무꾼은 정직한 것일까? 솔직한 것일까?

거짓 없이 말한 것이므로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나무꾼이 자신의 도끼가 아닌 금도끼에 조금이라도 탐심이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는 이렇게 말할 있을 것이다. "금도끼가 제 것이면 좋겠지만 제 도끼는 쇠도끼입니다."

이경우 나무꾼은 '솔직하고 정직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얼마만큼 정직해야 하고, 어느 정도로 솔직해야 할까? 

정직하거나 솔직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경계를 정하지 않으면

자기도 다치고 남도 상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바를 정正은 성을 짓밟기 위해서 곧장 달려가는 군대의 모습이다. 이  행위에 과불급을 적용해 보자. 이유도 없이 적이 침입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강제로 끌고 갔다면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복을 위한 정복이라면, 그 정당성은 약자와 공유되지 않는 정당성이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주관적인 솔직함으로 타인을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을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고 할 때 그것이 솔직이다. 따라서 솔직은 부정적인 요소가 들어갈 틈이 없다. 만약 친구가 "솔직하게 말해줘"라며 평가를 요구하더라도, 그 평가는 오로지 예술적 동기와 목적에 의해 창작된 순수미술과 같이 미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솔직함일 때 빛을 발휘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진솔(眞率)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솔率이 뜻하고 있는 나머지 의미들도 살펴보기로 하자. 

삼베는 대마의 껍질을 벗겨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직조한 베를 뜻한다.  

삼실을 만들 때는 먼저 삼껍질을 구덩이나 솥에 담아 증기로 익힌다. 이는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서이다. 잘 익힌 껍질을 엄지손톱으로 가늘게 째면 실처럼 된다. 이렇게 가늘게 쪼갠 삼을 길게 이어야 직조가 가능하다. 이 작업을 삼삼기라고 한다. 삼삼기를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숙포(熟布, 익냉이삼베)와 생포(生布,생냉이삼베)로 나누어진다. 


생포를 만들 때는 대마의 겉껍질을 먼저 벗긴 다음 속껍질만 가지고 삼삼기를 한다. 반면 숙포는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로 삼삼기를 먼저 한다. 그다음 물레에 돌려 실을 꼰다. 그리고 꼰 실을 잿물에 불린 후 물에 씻어 겉껍질을 제거한다. 


이때 삼실(糸)에 붙어있던 겉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 갑골문 솔率이다. 

이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손 수手를 더한 글자가 땅에 버릴 솔摔이다. 이로부터 '거칠다, 조잡하다, 대강, 대략'이란 뜻이 나왔다.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이 없고 가벼움을 뜻하는 경솔(輕率)에 그 뜻이 담겼다. 

한편 삼을 가늘게 쪼개는 과정에서 '거느리다, 통솔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삼 째기를 마친 삼실은 한 올 한 올 실마리를 찾아 하나로 합하고 그 머리 쪽을 묶어서 보관하는데, 이를 '가래'라고 한다. 가래의 과정에서 실마리 즉 실의 머리부위에서 '우두머리'라는 뜻이 나왔고, 여러 올의 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고 통합하는 모양에서 '거느리다, 통솔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장수를 선두에 세우고 나열한 군대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인솔(引率), 솔선(率先), 통솔(統率), 식솔(食率) 등이 그 뜻을 담고 있다. 


삼베의 고운 정도는 날실의 승수(升數)로 구분된다. 

한 승은 날실 80 올로 이루어진다. 베를 짤 때는 승수와 관계없이, 같은 너비의 바디에 날실을 꿰어서 직조한다. 따라서 승수가 높을수록 가늘고 고운 삼베가 직조된다. 

참고로『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따르면, 함경도 삼베는 워낙 고와서 한 필이 대나무 통에 들어간다고 하여 통포筒布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베를 짜는 일은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삼베 한 필(20자)을 짜는데 약 100가래가 필요하다. 보통 한 사람이 15가래를 삼을 수 있다고 하니 한 필을 짜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약 7일 동안 삼삼기에만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승수가 촘촘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좋은 것을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부유한 자와 권력자들의 삼베에 대한 사치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급기야 계급에 따라 삼베의 세수를 차별하였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진골 여인은 28승 이하 포를 사용해야 하고, 

진골대등은 26승 이하 포를 사용하도록 제한하였다. 진골 이하는 남녀를 구분하여 6~4두품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승수에 차등을 두었다. 이로부터 솔率은 '비율, 한도, 제한, 셈하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비율(比率), 능률(能率), 확률(確率), 승률(勝率), 환율(換率)등에 그 뜻이 담겼다. 



率 거느릴 솔/비율 율   

                  

거친 껍질 쪼개고 쪼개서

가늘어질수록 귀한 대접받았지

경사를 헤아려 

비율(率)로 등급을 매기고.

최상품은 백성을 거느리는(率 거느릴 솔)

우두머리들만 입었지.

고대에는 제사장이 입었고

고관대작이 입었고

귀족들이 입었지.

통일신라에서는 

계급에 따라 승수를 제한하여

진골여인은 28승 이하

진골대등은 26승 이하

하품은 평민들이 입었지.

소탈하지.

꾸밈없지.

가볍지.

率率 바람 들지

빛을 싫어하지

더할 나위 없다. 

저승 갈 때 입기에도.



작가의 이전글 무엇이 길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