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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Oct 13. 2024

지식과 지혜는 이렇게 말한다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인간 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무섭게 성장하는 AI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의 인간 종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은 스티븐 스필버거 감독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는 크고 몸은 바짝 마르고 사지는 앙상하게 퇴보한 ET의 모습 말이다.


몸은 퇴화하여 앙상하고, 머리는 커져서 흔들바위처럼 불안정 ET형 미래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간의 뇌는 점점 커졌고, 과거에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유인원에 비하면, 지금 인간의 몸은 많이 약해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의 뇌는 예전과 반대로 점점 작아져 갈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가 점점 커진 것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늘어날 공간이 없어서 두개골 속에 꾹꾹 눌러서 꾸겨 넣고 있는 중이지만, 조금 더 미래에는 아주 작아진 두개골 안에서도, 사지를 뻗고 기지개를 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면, 생명과 직결된 뇌간은 대략 계란 크기이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억, 판단 등 정신활동과 관련된 대뇌 속의 신피질이다. 앞으로는 이 신피질의 역할 대부분이 스마트 폰으로 옮겨갈 것이다. 아니 이미 기가바이트급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 당신은 몇 개의 휴대폰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난 요즘 허기지면 내 휴대폰 번호를 까먹고 산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완성품이 아닌 AI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의 뇌를 대신할 날이 코앞인 이 시대에 과연 지식이 필요할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앞으로의 시대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식과 지혜는 무엇이 다를까? 먼저 사전의 풀이부터 살펴보자.


지식,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지혜,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지식과 지혜에  대한  한자의 생각은 어떤지 살펴보자.


      갑골문           금문                       도지개            于

   

알 지知 갑골문과 금문은 화살 시 입 구 그리고 도지개를 그린 우로 구성되었다. 도지개는 활을 만들 때, 트집 가거나 뒤틀린 나무를 바로잡기 위해 고정시키는 틀을 가리킨다. 그 틀 화살의 가운데에 입을 그렸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말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말한다는 것일까?


화살 활쏘기를 뜻하고, 도지개는 활을 만드는 방법을 뜻한다. 전자는 훈련과 숙련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기술과 정보( Knowhow)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스승 혹은 장인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을 知라 한다. 그럼 이제 지식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식識에 대해서 알아보자.


       戠

알 식識은 말씀 언과 진흙 시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시戠는 찰진흙을 뜻하지만 의미와 달리, 갑골문은 창끝에 매달린 가늘고 긴 깃발을 그렸다. 논점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찰진흙과 깃발의 관계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깃발에만 집중해 보자.


알 식 고대에 전쟁에서 장수의 명령을 전달하였던 신호용 깃발이다. 원래의미는 깃발에 그려진 상징이나 기호의 의미를 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식'으로 읽으면 '알다'를 뜻하고, '지'로 읽으면 '적다'를 뜻하며, '치'로 읽으면 '깃발'을 뜻한다. 이후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소리 음音과 말씀 언言을 더해 식識이 되었다. 소리 음은 입으로 나팔을 부는 모양으로, 여기서는 깃발과 함께 사용했던 신호용 나팔을 뜻한다. 신호용 깃발이나 나팔은 장수의 명령을 전달하는 도구이므로 후에 명령을 뜻하는 말씀 언을 더했다. 


결국 알 지知는 활쏘기나 활 만드기와 같은 실천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뜻하고, 알 식 인식의 첫 관문인 귀나 눈을 통해 뇌에 입력한 표시나 말戠을 판단하여 그 의미를 아는 분별력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혜智慧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슬기 지智는 원래 알 지知와 같은 글자였다. 후에 지知가 배움의 전당인 학교로 옮겨가면서 선생과 제자 또는 학생들 간의 사귐을 뜻하게 되고 나아가 어조사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자, 원래의미는 가로 왈을 더한 지智의 형태로 분화시켰다. 그러므로 슬기 지智 지혜자의 말을 뜻한다. 지智의 지금 자형은 가로 왈曰이 잘 못 변형되어 날 일日로 바뀌었다.


지식이 지혜로 바뀌려면, 훈련과 숙련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필요한 정보의 양이 충분해야 한다. 활쏘기에 비유하자면, 먼저 활의 각 부위의 명칭을 알아야 하고, 겨냥하는 법과 호흡방법 등의 요령을 익혀야 한다. 말로는 간단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 뇌가 이를 인지하는 방법은 매우 복잡하다. 매 동작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절차적 지식을 기억해야 하고, 그때 사용되는 근육의 배합과 균형 그리고 호흡조절과 같은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람 등의 외부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마음 수련까지 익혀야 비로소 활을 제대로 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론과 경험적 지식의 축적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의 축적에서 한 발 나아가, 지식을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 이치를 깨달아 실제 생활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때 가능하다. 그래서 지혜를 다른 말로 산지식이라고 한다.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지식을 습득할 때 필요했던 대부분의 지식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지식은 배우고 익힌 것의 퇴적물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책을 쌓아놓은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 완전히 내 것이 되고 나면 더 이상 책이 필요치 않다. 이런 이유에서 지혜 혜는 빗자루를 구성요소로 삼았다.


지혜 혜는 빗자루(丰丰)를 손에()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비 혜마음 심으로 이루어졌다. 비 혜慧의 원래의미는 '쓸다'이지만 빗자루로 오물을 쓸고 난 후의 깨끗함(淸掃)에서 '깨끗하다, 빛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별 반짝일 혜와, 눈 설에서 혜는 '깨끗하다, 빛나다'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지혜 혜慧는 마음이라는 정신의 방에 쌓아놓은 오물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이다.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는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라고 하였다. 지혜에 이르지 못한 지식만 쌓다 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쌓인 그 퇴적물이 주인자리를 차지하기 십상이다. 마음 방이 비좁은 지식자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된다. 이때 쓸데 없는 지知를 깨끗하게 쓸어내는 것을 혜慧라 한다. 지知의 궁극적 목표인 바른 깨달음에 이른(正覺) 상태 즉 지혜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지혜知慧가, 온갖 잡다한 지식의 오물을 청소하는 모습이라면, 명철明哲은 마음 방의 정리정돈을 뜻한다. 밝을 철哲의 지금 형태는 꺾을 절折입 구口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원래는 꺾을 절과 마음 심으로 이루어진 글자였다.

         哲


마음을 도끼질斤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방에서 키우고 있는 지식 나무의,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잘라내는 모습이다. 마음의 방을 밝게 하려면(明哲), 마음의 창을 가리는 병들고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철哲은 '밝다, 결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잠언]에서는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라고 하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옛날에는 대중으로부터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 노골적인 검열방법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정보를 범람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쓸데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게 만들고, 정작 중요한 정보를 찾지 못하게 함으로써 창조를 익사시키는 검열방법을 쓴다고 했다.


참지식과 쓰레기 정보를 가려내는 지혜와 명철함이 필요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을 쌓아야 하고, 그것을 습득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마음 방이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기 전에 지혜의 빗자루를 들고 청소도 하고, 명철이라는 도끼를 들고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에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져나와 지혜가 아름답게 열린 책과 친해져야 한다.


가을바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 무릎 위의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재촉한다.

"이럴 바엔 쓰던 글이나 마무리 짓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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