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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Oct 19. 2024

흐르는 강물처럼

네 개의 눈으로 그린 세상

여기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그린 작자미상의 그림이다.


어떤 의미를 담은 그림일까?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면 의도적으로 제목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선입관을 배제하고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한 참을 멍하니 바라본 후 마음에 어떤 생각이 찾아들면 그때 제목을 본다.


가끔은 뜨악할 때가 있다. 바로 이 그림이 그런 경우다. 이 그림의 제목은 '옛날'이다. 내가 뜨악한 것은 나의 생각과 제목의 괴리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평론가들의 설명 때문이다. 평론가들의 설명은 대체로 일치한다. 고대에 큰 홍수로 인해 범람한 물巛이 태양日을 덮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라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아의 대홍수를 떠올릴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사실로 전제해도 노아의 대홍수, 아니 황하강의 범람이 옛날이라는 시간을 대표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관련된 글자들에서는 눈 닦고 찾아봐도 대홍수와의 연관성은 발견할 수 없다. 옛 석昔이 들어간 글자들을 보자.


서로 애틋하게 이별함을 뜻하는 석별別,

돈을 빌리거나 꾸어 씀을 뜻하는 차용

벌어지는 사태를 잘 살펴서 필요한 대책을 세우고 행함을 의미하는 조치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을 뜻하는 착각


이 글자들 속에서 대홍수가 보이는가. 내 눈에는 대홍수는커녕 엎질러진 물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즐겨하는 한자 놀이가 있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키워드를 정해 관련된 글자나 단어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키워드가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이 키워드를 적용하면, 이 글자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두 개의 한자를 대표로 세울 수 있다.


기존 해석을 대표하는 한자는 재앙 재災이다. 후자는 돌 순巡이다.

재앙 재에서 내 천은 강의 범람을 뜻하고, 돌 순에서 내 천은 흐르는 강물처럼 순행한다는 뜻이다. 순행은 산기슭 작은 옹달샘에서 발원한 물이 강으로 흘러 큰 바다를 이루었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비가 되어 내리는 일련의 주기적 순환을 뜻한다.


이제 이 두 글자에 석昔의 구성요소인 날 일日을 더해보자.


전자는 '재앙의 날'이 되고, 후자는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 날'이 된다.


옛날을 뜻하는데 어느 쪽이 더 적합할까?


사실 대홍수를 뜻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홍수의 원래의미는 '흐르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홍수를 히브리어로 마불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흐르다, 이동하다, 달려가다'를 뜻하는 야발에서 유래되었다. 이를 보듯이 옛 석昔의 원래의미는 '강물처럼 흐르다'이다.


흔히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시시각각 장면 전환을 하기 때문이다. 동녘에서 서녘으로 항구히운행하는 해를 볼 수 없다면 하루를 인식할 수 없고,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해가는 달의 주기적 순환을 볼 수 없다면 한 달을 인식할 수 없고,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없다면 한 해를 인식할 수 없다.


시간은 따뜻한 봄날 나비의 날개를 타고 와서 새싹에 앉았다가 마지막 남은 에 앉아 잠시 숨을 고 후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에 떠밀려 잎사귀와 함께 으로 떨어진다. 가운 음 속에서 겨우내 잠들었다가 개구리의 울음소리 잠을 깨어 시 을 타고 흐른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태초라는 옹달샘에서 발원하여 강속에 서있는 현재의 나를 거쳐 미래로 흘려간다. 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왕래하지만 나는 항상 지금 현재에만 존재한다. 다만 시간이 나를 매 순간 방문했었다는 사실은 내 이마 위에 흐르고 있는 시간의 흔적만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시간에 대한 석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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