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전쟁에 대비하는 부부의 자세
미세먼지가 극심할 때도 귀찮다고 안 쓰던 그 마스크를 이토록 귀하게 모시게 될 줄 알았을까?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하나 사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요즘, 우리 부부도 마스크 전쟁에 대비를 하게 되었다. 봉구 남편은 마스크가 생기면, “냥세가 걸리면 안 되니까 이건 냥세가 써, 난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이내 난 이렇게 쏘아붙인다.
“난 당연히 마스크 써서 안 걸릴거고,
오빠가 걸려서 나한테 옮길까 봐 문제인거야!!! 그러니까 꼭 쓰고 다녀!”
안 그래도 길쭉한 눈이 더 길쭉해지며 주섬주섬 마스크를 쓴다. 까만 마스크에 코를 살짝 내놓으려고 하지만 나의 가자미 같은 눈이 그걸 그냥 놓칠 리가 없다. 봉구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마스크를 쑥 위로 올린다. ‘휴.... 정말 얼른 이 불안하고 전쟁 같은 시기가 빨리 지났으면.’
마스크 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고, 마스크를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을 거라는 회사 동료의 말에도 난 설마 그 정도가 되려나 싶었지만, 예상 보다 더욱 심한 마스크 전쟁을 겪고 있다. 편의점, 마트, 약국을 다 돌아다녀 보아도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마스크 없음’에 실망만 커진다. 결국 난 봉구 남편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우리 그냥 이 참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까?”
아마 봉구 남편은 이 소리가 가내 수공업으로 한두어 장 만들어 보겠다는 말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인터넷에 ‘마스크 기계’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기계 한 대를 중고로 사는 데 5천 만 원이 들고 그 기계를 놓으려면 창고 같이 넓은 공간을 얻어야 하는데...그 창고 임대료까지 하면...’ 하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 같았다.
우리 집 근처에서 하루에 1인당 다섯 개씩 마스크를 판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와 봉구 남편은 머리에 띠만 안 둘렀지 꼭 성공해 보겠노라며 반차까지 내고 함께 줄을 섰다. 건물을 끼고 아주 크게 세 바퀴나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그야말로 마스크 전쟁이 따로 없었다. 과연 우리에게까지 차례가 올까 하면서 앞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머니 군단들의 항의 소리가 들렸다. “아니, 여기 줄 서라고 해서 섰더니만 이제 와서 이 줄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나 세 시간 전에 줄 섰단 말이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 틈을 타 그 군단에서 탈출한 몇몇 사람이 우리 뒤로 냉큼 붙었다. 그러면서 그 군단과 자기네들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아, 거 아줌마 이제 그만 좀 합시다. 시끄럽네!!!” 어디선가 마스크 원가가 400원이라고 하던데, 이거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고 이것 때문에 이 긴 시간동안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코로나가 불러온 또 하나의 전쟁 같다.
두 바퀴쯤 돌았을까. 이제 고지가 곧 보인다고 봉구 남편과 인내력을 다지던 그 순간, 갑자기 우리가 서 있던 줄 사람들이 빠르게 앞으로 뛰어 갔다.
“앞 사람 놓치면 안 돼!”
우리도 함께 뛰며 앞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그때! 끝줄을 찾던 한 아저씨가 우리가 앞 사람과 벌어진 틈을 타 그 사이로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 아저씨 뭐예요?” 봉구 남편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갑자기 안내요원이라도 된 양, 옆으로 비켜서서 우리 보고 앞으로 가라면서 줄 안내를 했다. “푸하하하하하, 자기도 새치기 한 게 민망했나보다!”라며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이제 마스크 구입 5부제가 시행된다고 하니 이런 마스크 전쟁이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란다.
내 생각엔 봉구 남편은 아마 오랜 시간 줄 서서 달랑 마스크 5개를 산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줄서서 기다리면서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실 난 요즘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생략된 말: 냥세가 아니면 난 오늘 여기 서 있지 않을 거야!)
그냥 혼자 간다고 하는 나에게 “아니야, 혼자서 기다리면 심심해. 나랑 같이 가”라고 말하며 기꺼이 마스크 전쟁에 함께 뛰어 들어준 봉구 남편에게 고맙다. 봉구 손에 다섯 개, 내 손에 다섯 개 들고 뭔가 아주 큰 것을 받은 것처럼 마음까지 벅차올랐다. 그날 밤, 난 봉구 남편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면서 “오늘 미션 수행 완료하느라 수고가 많았어요옹”라고 말했다.
그래도 마스크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나는 해외배송 사이트를 알게 되어 그곳에서 마스크를 주문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사이트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으니, 해외 제품이라도 사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마스크는 일본 제품인데, 이게 영국에서 오는 거란다! 대체 이 마스크의 정체는 뭘까? 그래도 50장이나 들어있으니 꼭 사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결재를 하였고, 2주가 지난 지금, 여전히 마스크는 오지 않았다. 아마도 배에 타고 있으려나. 과연 무사히 배송될지는 미지수이지만 50장을 받으면 10장 씩 친정과 시댁에 나누어 줄 생각을 하니 뿌듯해진다. 아니, 이 마스크가 뭐라고 이걸로 웃고, 울고, 화내고, 뿌듯해하기까지 한단 말인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중에, 엄마에게서 톡이 왔다.
“막내야, 마스크 샀니? 엄마는 약국에서 줄서서 마스크 5개 샀어!”
“엄마, 부럽다. 그런데 엄마 허리도 안 좋은데 어떻게 줄을 섰어?”
“사람들이 줄 서 있길래 나도 섰더니 17번 번호표 받아서 20명까지 살 수 있는 거 나도 샀지. 이거 너 줄게!”
허리도 안 좋은 엄마가 줄 서서 마스크를 샀다니,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난 그 마스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요즘엔 교회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린다. 물론 아침부터 준비하고 차로 30여분이 걸리는 거리를 가지 않고도 예배드린다는 것이 편하기도 하지만 교회를 가면서 차 안에서 봉구 남편과 나누던 대화 시간이 그립다. 암튼 우리 부부가 겪고 있는 이 마스크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 매일 나는, 마스크가 다시 예전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500장 주문할 거라고 다짐한다. 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를 바란다.
오늘의 한마디
냥세가 그토록 원하니 마스크 써야지!
“어, 그,,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