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맥컬리 마신다고?”
오늘 저녁에도 남편과 나는 TV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저녁을 먹은 지 3시간 정도가 지났는데 남편은 불룩 나온 배를 톡톡 치면서 드럼 연주를 한다. 나의 남편 뽀글 서방은 드럼 치는 것이 취미다. 아니, 어쩌면 단순 취미를 넘어선 생존 취미랄까? 생존 취미는 꼭 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결혼 전에는 남편이 이토록 드럼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그냥 교회 찬양팀에서 예배시간에 연주하는 정도로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 온 모습으로는 남편에게 드럼은 생존 취미이다.
오늘도 뽀글 서방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 배경 음악에 맞춰서 배를 두들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대충 두들기는 것 같아도 어쩜 박자가 이리도 딱딱 맞는지! 그러면서 노래 부르듯 어김없이 오늘도 이 말을 밖으로 내뱉는다.
“냥세~! 나 맥컬리 마셔두 돼?”
맥컬리, 맥주와 막걸리의 합성어! 뽀글 서방이 만든 말이다. 뽀글 서방은 마트에 가면 늘 맥주와 막걸리 둘 중에 갈팡질팡하면서 고른다. 그리고 나한테 맥주 마신다고 했다가 사 들고 들어오는 것 보면 막걸리다. 반대로 막걸리 마신다고 했다가 맥주를 사 들고 온 적도 있다. 본인도 결국 집 앞 편의점에 가서 결국 뭘 사 들고 올지는 가서 결정 난다는 것을 알았는지 ‘맥컬리’라는 합성어를 만들어버렸다. 대략 밤 10시가 되어갈 때쯤엔 “냥세! 나 맥컬리 마셔두 돼?”라고 어김없이 묻곤 한다. 아마 지금 드라마 배경 음악에 맞춰 박자를 만들어 낼 만큼 드럼 배를 만든 것도 맥컬리가 해낸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맥컬리는 우리 부부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결혼 전에 남편이 이토록 맥컬리에 빠진 사람인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나와 뽀글 서방은 교회를 잘 다니는 부부다. 물론 결혼 전에도 우리는 각자 교회를 무척이나 잘 다니는 청년이었다. 처음 뽀글 서방과 소개팅할 때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술은 드시나요?” 이렇게 묻는 나의 물음엔 어쩌면 답이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안 마신다고 말해, 마셔도 적당히 아주 조금만 마신다고 말하란 말이야!’
이런 눈빛을 알아챘는지, 남편은 그때, “아. 맥주 아주 조금만 마셔요. 그렇지만 절대 많이 마시지 않아요.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 내 맘은 그를 내 배우자로 조금 더 맞는 사람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와 가까이 지내왔고, 누누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배우자는 당연히 술 안 마시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 3년 차, 이렇게 밤마다 맥컬리를 찾는 남자가 나의 남편이다! 그리고 맥컬리는 우리 부부의 밤 10시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밤마다 맥컬리를 찾고 드럼 배를 두들기며 “맥컬리! 맥컬리!” 노래를 부르는 뽀글 서방을 보고 정이 슬그머니 달아나 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뽀글 서방이 뭔가 시무룩해 보이고 입이 삐죽 나와 있으면 내가 먼저 “뽀글아, 내가 맥컬리 사줄까?” 하며 달래고 있다.
하루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늦은 밤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뽀글 서방과 나는 약속이 있을 땐 1시간에 한번씩 서로에게 생존 보고를 하듯 이모티콘을 보내기로 했는데, 내가 이 약속을 쉽게 까먹어 버린다. 그날도 역시나 난 생존 보고를 잊고 집에 신나게 들어가고 있었다. 뽀글 서방에게 톡이 왔다.
“혹시 지금 맥컬리 사 올 거야?”
‘혹시’라고 확인하는 말인데 내가 읽을 땐 왜 “넌 오늘 나한테 생존 보고도 안 하고 나 삐졌어 그러니까 지금 들어올 때 사거리 모퉁이 편의점에서 맥컬리 사 오도록 해!”라고 들리지? 난 가던 길에서 조금 되돌아가 천백 원짜리 막걸리를 사 가지고 갔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뽀글 서방이 맥컬리 사 왔냐면서 반기는데, 이 반김이 나를 반김인지 내 손에 든 걸 반김인지 모르겠지만, 뽀글 서방은 맥컬리 하나에도 이렇게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뽀글 서방의 볼록 배는 모두 맥컬리 탓이라 여기는 나는 요새 뽀글 서방에게 맥컬리를 줄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줄이기도 참 어려운 환경이다. 대형마트에서는 수입맥주가 4캔에 만원, 심지어 세일하는 날에는 8천8백 원까지 내려간다. 이러니 어떻게 줄일 수가 있을까? 그리고 비올 땐 뽀글 서방이 부침개를 하며 부침개 한쪽 면이 부쳐질 사이에 바람처럼 막걸리를 사 가지고 온다. 이제 나도 뽀글 서방이 수입맥주를 고를 때, 가자미 눈을 하고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예쁜 수입맥주 캔을 보고 나도 골라본다. 또 비가 오는 날에는 혹시나 뽀글 서방이 부침개 안 해 주려나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도 닮아 간다.
“그 배, 어떻게 할 거야? 배가 이젠 그렇게 둥실둥실한 모양으로 굳은 거 같아. ㅜㅜ”
“아니야, 아니야, 냥세! 봐봐 이거 다 근육이야!”
뽀글 서방은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며 불룩 나온 배가 근육이라며 농담을 한다. 그리고 나는 건강 생각해서 밤마다 마시는 맥컬리를 좀 끊으라고 말했지만 뽀글 서방은 그렇게 한다고 말하면서도 어김없이 밤 10시쯤이 되면, 또 맥컬리를 먹고 싶은 충동에 입에서는 “맥...”자를 꺼낸다.
한 번은 내가 뽀글 서방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나한테 허락받는 듯 맥컬리를 마셔도 되냐는 질문을 듣기 싫다고 말이다. 내게 맥컬리를 마셔도 될지 허락을 받는 듯하면서도 내가 허락을 안 해주면 해줄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에 기필코 맥컬리를 마시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이 질문은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건강관리는 알아서 하고 맥컬리도 알아서 적당히 마시던지 하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랬더니 역시 오늘도 밤 10시가 되니 뽀글 서방은 이렇게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한다.
“냥세, 나 맥컬리 마셔도 돼?”
“아, 그럼 그럼 마셔도 되지!”
옆에서 혼자서 묻고 혼자서 답하는 뽀글 서방을 보고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고 말았다. 나는 뽀글 서방에게 맥컬리를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만 맥컬리가 뽀글 서방에게는 하루의 ‘시원한’ 마무리임을 알고 있다. 물론 맥컬리가 아닌, 몸에 좋은 다른 시원한 마무리로 밤을 맞이하면 좋겠으나 지금 당장은 맥컬리만 한 게 없는 듯하다.
100세 가깝게 사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맥주로 하셨는데, 이것을 보면 하루에 꾸준히 마셔주는 맥주 한 잔은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맥컬리를 찾는 뽀글 서방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의 한 마디
냥세,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이 말은 즉, “난 맥컬리를 사러 갈 거야, 그러니 냥세 꺼도 하나 사다 줄게!”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