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정에 눈이 내렸다. 화이트 뉴이어(New Year). 그러나 별 감흥이 없었다. 창문 너머로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도 그냥 ‘눈 내리네’ 반응하는 정도. 내일 영업하기 전에 업장 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하는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일 뿐이었다. 어떤 한 라디오 방송에서 눈을 기가 막히게 빗대어 표현한 게 기억난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에요. 아이들에게나 좋죠 뭐, 사실 어른들 봐봐요. 찻길도 지저분해지고 신발도 더러워지잖아요. 눈 때문에 사고도 많이 나고. 눈 녹으면 물기는 바닥에 다 묻고 청소도 몇 번이나 해줘야 하구요.”
극히 공감했다. 나에겐 있는 그대로의 눈을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뒷처리를 어떻게 할지에 급급한 전형적인 동심 파괴 어른이었다. 물론 코로나 블루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누적된 피로감 탓도 있었을 것이다.
눈발이 서서히 약해지고 주완이가 자야할 시간이 다가올 무렵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아파트 단지 길목에 쌓인 눈을 보다가 갑자기 나만 봐서는 안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새하얀 눈을 주완이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쓰레기 취급했던 눈이 예뻐 보였다. 눈을 밟는 느낌, 뽀드득 거리는 그 소리마저도 좋았다.
주완이가 눈을 만지작 거리다 차가운지 곧 털어낸다. 작은 운동화가 길 위에 쌓인 눈더미에 푹 빠진다. 이리로 저리로 뛰어 다니며 2021년 첫날의 설국을 누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에 시선이 머문다. 아빠와 엄마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놓칠새라 사진과 영상을 재빨리 찍는다.
2021년 신정의 밤,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있는 그대로의 눈 자체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던 그날 밤. 난 그날 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쓰레기라는 눈에 대한 비유 표현도 버렸다. 나에게 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않았다면, 눈이 오지 않았다면, 히즈만나 영업 휴무일이 아니었다면. 온갖 가정이 붙었다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을 일. 모든 상황이 퍼즐처럼 맞춰진, 선물 같았던 1시간. 이 1시간은 나와 아내와 주완이에게 평생 기억될 것이다.
202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