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히즈만나

부활

by 최지훈

“저기 가보고 싶어? 아빠 손 잡고 가볼까?”

언제부터인가 낯선 곳을 걸어갈 때면 주완이가 아빠 손을 잘 잡아준다. 뿌듯한 나머지 사진을 찍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한 마디 더 거든다.

“아빠 좋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지만 아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럼 아빠는 더 신나서 잘 걷다 말고 번쩍 들어 아들을 안아준다. 요즘 나와 주완이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풍경이다.

내 손을 잡아준다는 건 그만큼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일 것이다. 손 한 번 뻗어주는 것으로 이렇게 아빠의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좋아지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기도 한 번으로, 묵상 한 번으로 천국에서 잔치를 여시지 않을까.

부활주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아버지, 예수를 묵상한다.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며 갈보리 언덕에서 죽어가신 예수.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피를 흘리며 온갖 욕설과 저주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랬던 예수의 부활. ‘죽음’이라는, 이 세상의 끝을 허물고 다시 시작된 그의 생명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가장 치욕스런 십자가 형벌을 받은 사람이 부활했다는 사실, 직접 예수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무신론자에, 지독한 이성주의자에, 실증과 논리에 능한 경제학도였던 내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아니, 믿어진다. 그래서 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이 갖고 있는 실제적인 능력에 대하여.

칠흑 같은 어둠이 내 삶을 지배하고 절망속에 허우적댈 때, 떠올린다. 이 세상의 끝,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 분을 믿으면 불가능은 없다. 눈 먼 자 눈 뜨게 하고 앉은 자 걷게 하며 병든 자 낫게 하시는 그 분의 능력을 믿자. 그러면 놀랍게도 소망이 샘솟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갑자기 희망이 솟구쳐 오른다.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도전 의식도 생긴다. 외부 상황은 전혀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도.

오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물음에 고민 없이 답해주었던 주완이처럼.

“아멘 - 주님의 부활을 제가 믿습니다.”


202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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