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네게서 비롯된 부성애

by 최지훈

나는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여태껏 적지 않은 아이들을 보아왔다. 그리 대가족은 아니지만 가까운 친척 형누나들이 모두 아이 둘셋은 낳은 터라. 형누나의 아들딸을 보아도 귀엽다, 예쁘다 정도에서 그쳤다. 나를 보고 웃어주거나 재롱을 피울 때에만 귀엽고 예뻤고, 울거나 똥을 싸거나 나를 성가시게 하는 일이 생기면 외면했다. 그래서 아기의 몸짓과 표정을 보고 어쩔 줄 몰라 끔뻑 죽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항상 말했다.


“나는 말 안 통하는 애들이랑은 잘 안 맞드라.”


대학생이 되어 중고등학생 과외를 하면서, 이 말이 더 절절히 와 닿았다. 나는 말 안 통하는 아기들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신기했다. 나 역시 결혼을 했으니 자연스레 아이 갖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동네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아이를 둔 가정을 많이 본다. 그들을 보면서, 또 주변에 아이를 낳고 사는 가정을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저들은 원래부터 모성애가, 부성애가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저리 잘 놀아줄까.’


황금 같은 주말에, 영화를 보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든 뭐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휴일에,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저들,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영웅이 없는 세상이라는데 저들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지난 20일 전, 나와 아내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흘러나오게 만드는 힘이 아가에게 있었다. 부성애, 모성애라는 놀라운 능력, 젖 주면 젖 빨고 기저귀 갈아주면 똥오줌 싸고 눕히면 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내 한 몸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만드는 그 힘은 아이를 밴 순간부터 낳기까지 열 달 동안 태동의 시기를 거치며 준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태어난 순간, 아가가 부모를 쳐다보며 입을 꼬물거리고 눈을 깜빡이고 하품을 하는 등 온갖 표정을 짓는 그때에 빵! 하고 극대화되는 것이었다.

한 아이에게서 받을 수 있는 힘은, 4년 내내 경제학과에서 배운 효용 극대화를 위한 수단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돈을 주고 사는 재화나 서비스를 통해 느끼는 사람의 효용을 수식화해서 표현하는 경제학의 차가운 논리를, 아가의 뜨거운 심장이 녹여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떨림과 울림이다.

내가 아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 내 아들이어서 예쁜 것인지, 이마저도 목을 가누고 기어 다니며 두 다리를 써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변성기가 오고 사춘기가 왔을 때에도 여전히 예뻐 보일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 내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주파수가 높으며, 하루에 소리 내서 웃는 횟수는 평소의 5배가 늘었고,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똥 싼 기저귀를 들고 냄새를 맡고는 미소를 지으며, 하루에 몇 번이나 젖병을 씻고 소독을 하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다.

나도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정답 없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