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삶의 현장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경제에 대한 정의

by 최지훈

“여러분은 경제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1학년 1학기 경제학개론 첫 시간, 교수님이 우리에게 질문했다. 담당 교수님은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교수였다. 학교 선배니까 선배처럼 편하게 수업하겠다, 는 말에 이어 그는 화이트보드에 ‘경제’라는 두 글자를 큼지막하게 썼다. 그런 뒤에 손을 들어 발표해보라는 눈빛을 학생들에게 쏘아댔다. 그러자 한 학생이 그 눈빛에 못 이겨 손을 들었다.


“오, 그래요. 어떤 대답이든 좋아요. 경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을 나눠줄래요?”

학생이 말했다.
“경제란 경세제민의 줄임말입니다.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님은 말을 이어갔다.
“맞는 말이에요. 또 다른 학생 없나요?”

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경제는 경기가 좋다 안 좋다 할 때의 그 경기를 말합니다.”
“그것도 맞죠. 한 학생만 더 받겠습니다.”
“우리 목줄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경제입니다.”

마지막 학생의 발언을 끝으로, 교수님은 질문을 정리했다.


“여러분이 말해준 것들, 다 맞아요. 그럼 이쯤에서 질문은 그만 받는 걸로 하고요. 제가 답을 말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겠죠? 결론부터 말할게요. ‘답은 없습니다.’ 오늘 경제학을 시작하는 첫 시간이죠. 개론은 말 그대로 총론을 배우는 과목이에요. 앞으로 무수히 많은 각론을 배울 것이고. 하지만 또 그게 경제의 전부가 아니죠. 앞으로 4년 동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졸업 후에 경제를 몸소 살아내면서 경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정의는 달라질 겁니다. 여러분 각자가 내린 정의가 답이라면 답이겠네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하죠.”


수년이 흐른 지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많은 것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개론 수업의 첫 장면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객관식으로 답을 내는 고등학교까지의 공부와 달리, 대학은 스스로 답을 내리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걸 절절히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라는 단어에 정체 모를 끌림을 느끼고 입학 원서를 쓴 게 나와 경제의 첫 만남이었다. 4년을 공부하고 남은 것은 누구에게 잘난 척하면서 설명할만한 거창한 미시와 거시 경제학 이론이 아니다. 래퍼곡선이니 MRS니 라그랑지안이니, 보통 사람이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아니다.


남은 건 단 하나, 개론 첫 수업 날 교수님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던 경제에 대한 ‘관점’이다.


경제학과 나왔다 하면 주변에서 다들 묻는다. 가장 자주 묻는 것은 주식 투자에 대해서, 또 그밖에 환율, 금리, 요즘 경제 정책이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경제, 라고 하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만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게 사실이다. 논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보니 경제학과 출신에게서 나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답을 듣기 원했을 것이다. 코스피가 떨어졌고 어느 기업의 시가총액이 어떻고 환율은 한화가치가 미화 가치에 비해 평가절하 됐고 금리는 낮고. 이 현상 뒤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해주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경제는 나와는 거리가 먼,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무엇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야말로 삶 그 자체다. 우리네 인생이다. 어려운 단어가 있어야만 경제가 아니다. 오늘 들린 편의점에서 본 커피가, 회식 때 돌려 마신 막걸리가,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이, 맥주와 소주가 곧 경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다.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풀어내는 것이 경제가 아니구나. 미시경제학에서 배운 가계와 기업의 효용극대화 이론이, 거시경제학에서 배운 고전학파와 케인즈 학파의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경제구나.’


이것이 지금도 기억 속에 맴도는 질문에 내가 내린 답이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해도, 경제에 대한 이 정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언제나 어디서나, 경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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