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시선
어릴 적에는 대단해 보이던 일이 막상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게 느껴진다. 어른의 일은 항상 대단해 보였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오락실에 자주 갔다. 내가 가던 오락실 근처에는 경찰서가 있어서, 밤 10시 정각만 되면 지폐를 동전으로 곧잘 바꿔주던 친절한 아저씨가 불호령을 지르는 괴팍한 아저씨로 변하곤 했다.
“너거들 퍼떡 안 나가나? 단속 온다, 단속!”
불호령이 떨어지면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은 킹 오브 파이터즈와 철권 게임의 조이스틱에서 손을 떼고 미성년자들은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단한 어른은 밤 10시 가 넘은 시각에 오락실에 머물러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다.
밤 10시 이후 오락실에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떠나고, 마음껏 술을 마시고, 원하는 대로 돈을 쓰는 어른을, 나는 동경했다. 내가 살던 마산의 중심지는 ‘시내’라 불리는 합성동이었는데, 그곳엔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거진 삼십 분마다 있어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도 어른들은 승차권을 끊고 마산을 떠났다.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고 산뜻해 보였다. 내일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터미널 뒷길에는 각종 술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술집에 들어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사는 게 저리 즐거울까 싶었다. 어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만큼 순진하고 맑았다는 뜻일 것이다.
막상 내가 어른이 되니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인생사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저마다 속사정이 있는 법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다 큰 어른이라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어른의 인생이며, 마음껏 술 마시는 것도 ‘피차 그럴 사정이 있어서’이고 그마저도 몸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이며, 원하는 대로 돈을 썼다면 이 세상 어른들은 이미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 10시는 어른에게 극히 이른 시각이라는 것이다.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붕어빵을 팔던 아주머니는 장사를 접고 어딘가로 떠났다. 만들 때 필요한 단계별 절차를 내게 설명해주었는데, 그 설명을 재밌게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주머니는 붕어빵을 만드는 데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고향을 떠나 지내면서 합성동 붕어빵 맛보다 더 나은 곳은 단 한 곳도 찾지 못했다. 나는 모든 어른이 본인이 하는 일에 그 정도의 자부심을 느끼고 사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차디찬 겨울밤에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 칸막이에 앉아 아주머니가 정성 들여 만든 붕어빵을 호호 불어먹었던 그때가 그립다.
“야야, 붕어빵이랑 같이 먹그라.”
늘 오뎅 국물을 함께 챙겨주던 아주머니의 넉넉함은 합성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휘되고 있을까. 고함을 지르던 오락실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밤 10시 다 되었으니 정리하고 퍼떡 나가라고 소리치던 그의 매서운 눈빛은 여전할까. 합성동을 드나들던 젊은 청춘들은 모두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겠지. 그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른을 동경했고, 어른이 하는 모든 게 대단해 보였던, 순수하기 짝이 없었던 유년기의 시선이 그립다.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대단치 못한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