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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완비’ 보다 ‘질투의 화신'

'질투의 화신'의 세련미, 조정석 포에버!

by 향연

“우리 이제부터 젠더플립 할 거야!”라고 선언하는 ‘나의 완벽한 비서’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높은 화제성과 별도로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이성적인 여성 CEO와 감성적인 남성 비서. 그들이 보여주는 클리셰 전복이야기. 새로운 듯 새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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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16년 방영한 공효진, 조정석 주연의 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우린 결국 이렇게 젠더플립이 됩니다”라며 과정과 결과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남성 주인공 이화신(조정석)은 9시 뉴스 앵커를 지망하는 마초 기질이 다분한 기자다. 여자 주인공 표나리(공효진)은 그런 그를 3년째 짝사랑하고 있는 계약직 기상 캐스터다. 마초와 순애보. 정규직과 계약직.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권력 차이로 말미암아 남성이 여성을 구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예상된다.


하지만 홍자매는 이 부분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이야기는 화신이 유방암에 걸리면서부터 시작된다. 표나리는 부끄러워하는 이화신과 함께 유방외과에 내원하며 그를 돌본다. 시간은 흘러 화신은 9시 뉴스 앵커 오디션을, 표나리는 아침 뉴스 앵커 오디션을 앞두게 된다. 그러나 둘이 같이 유방외과에 간 사실을 회사에 들키자 표나리는 이화신을 지키고자 “내가 유방에 문제가 있어서 함께 병원에 간 것”이라며 화신의 약점을 본인의 허물로 돌린다. 여기서 나리의 ‘순애보’ 정신은 ‘기사도’ 정신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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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신은 뉴스에서 “남성 유방암”을 보도하며 자신이 유방함 환자임을 밝힌다. 화신이 유방임을 알아보고 본인의 곁을 지켜준 애인인 표나리에게 감사함을 표현한다. 보도 전 나리가 화신에게 “여자들 유방에 문제 있을 때 많다. 여자는 이런 병 걸린 거 밝혀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화신은 보도 전 오히려 “여자나 남자나 똑같지!”라고 말한다. 젠더에 대한 의식이 바뀐 남성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이끌어낸다.


화신이 나리에게 사랑을 깨닫는 계기도 재미있다. 화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재벌인 고정원(고경표)이 나리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면서 ‘질투’를 느끼게 되고 이는 곧 절친한 친구 간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질투에 목숨을 거는 것은 결국 여성이 아닌 남성 등장인물들. 여성 주인공은 남성 주인공 화신을 그저 묵묵히 지켜줄 뿐이다. 이런 캐릭터를 매력있게 변모시킨 배우들의 덕도 컸다. ‘공효진이 공효진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꿋꿋한 여주인공을 연기한 공효진. 화신의 찌질한 모습을 위트있으면서도 매력있게 소화해낸 조정석의 연기는 10년이 지나도 재미있다.


질투의 화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남성성에 손상이 간 남성이 왜곡된 성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은 같다’고 말하고.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하는 재벌 남성이 아닌 자신이 지킬 사랑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 질투의 화신’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네 성별의 클리셰 안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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