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현 Oct 25. 2019

고향을 떠나 우리 곁으로 온 식물들

식물도 우리도 결국은 나그네니까 - 을녀심





을녀심(Sedum pachyphyllum)은 꽃처럼 탐스럽게 달린 잎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어여쁜 다육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을녀심이라는 이름은 앙증맞은 이 식물에게는 왠지 너무 사연 있는 이름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을녀심은 애심, 청솔 등 비슷하게 생긴 다육이들이 많아서 잎의 모양과 물드는 색을 잘 봐야 구분이 됩니다. 을녀심은 잎 끝만 빨갛게 물이 들어 루돌프 코라는 별명도 있어요. 센스 넘치는 꽃집 사장님은 쑥 웃자란 을녀심으로 이렇게 예술혼을 불태웠습니다. 꼭 눈 속에 묻힌 야자수를 보는 것 같아요.




©JeonghyunLee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그 식물의 원산지가 어딘지 알아보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살펴봐서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을녀심을 잘 키우고 싶으면 을녀심의 고향인 멕시코 산악지역의 환경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되죠.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건조한 지역에 적응해 살아온 다육 식물과 축축한 열대 숲 속 키 큰 나무들의 발치에서 자라던 열대 식물을 한 공간에서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산지 생각을 하며 화분 속 식물을 보면 고향을 너무 멀리 떠나온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조금 슬퍼집니다. 사람이 그렇듯 식물도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환경이라면 건강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다육 식물들은 직접 들어오는 충분한 양의 햇빛과 물이 잘 마르는 건조한 흙이 필요합니다. 열대 식물들은 큰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 안처럼 간접적으로 어른어른 들어오는 빛을 훨씬 좋아하고, 공중의 습기를 흡수하는 식물들을 위해서는 분무기로 가끔씩 물을 뿌려주는 게 필수적이지요. 모든 다육 식물과 열대 식물들이 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식물 각각의 원산지와 환경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JeonghyunLee





하지만, 화분 속에 심겨 실내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더 이상 원산지의 자연에서 자라던 식물과 같은 식물일 수는 없습니다. 잎이 마시는 공기도, 뿌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흙도 너무나 달라졌으니까요. 실내의 공기는 웬만하면 잘 변하지 않고 바람도 좀처럼 불지 않습니다. 화분의 크기는 정해져 있고 흙 속에는 별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요. 같은 흙과 공기를 나누던 이웃 식물들, 동물들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곁으로 온 식물은 그래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훨씬 더 강해지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말도 못 하게 약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원산지에서 만들어진 타고난 식물의 성격을 최대한 파악하고 좋아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지금 식물이 살고 있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JeonghyunLee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지 않거나 자료가 많이 없는 식물들에 대해 알아볼 때는 해외 자료를 뒤져봅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종종 동일한 식물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권하는 재배법과 해외 자료에서 말하는 재배법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몰라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름과 캘리포니아의 여름, 네덜란드의 여름은 정말 다르니까요. 우리에게 전해지는 재배 방법의 대부분은 누군가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환경에서 식물을 오랫동안 키워보며 체득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환경과 스타일에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해외 자료뿐 아니라 수많은 식물 키우기 정보들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등불이지만, 그대로만 하면 실패는 절대 없는 만능 주문은 될 수 없습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이 알려주는 방법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요. 식물 초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다행인 것은 식물도 우리가 만들어준 환경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꿈에도 그리운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이나 우거진 숲 속 타령을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할은 그런 식물의 노력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JeonghyunLee





아버지께서 어떤 분한테 들었다는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건 커다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던 선원이 어느 바닷가 마을에 잠시 내린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닷가에 잠시 내려 예쁜 조개껍질도 줍고 그곳의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도 가질 수 있지만 타고 온 배의 선장이 다시 배에 타라고 부르면 언제든지 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여기 머무르는 시간이 잠시일 뿐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곁 식물들의 머나먼 원산지 이야기를 들으면, 고향을 떠나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식물들처럼 우리도 여기서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살다가 또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JeonghyunLee






<을녀심 키우기>



빛 : 밝은 빛을 충분히 받아야 웃자라지 않아요. 잎이 듬성듬성해지면 빛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봄, 가을에 햇빛을 잘 받아야 끝부분이 빨갛게 물드는 걸 볼 수 있어요.


물 : 흙이 완전히 마르거나 잎이 살짝 쪼글거릴 때 충분히 물을 주시고 물이 잘 빠지게 해 주세요. 장마철이나 겨울에는 특히 건조하게 키워 주셔야 합니다. 아래쪽 잎이 아니라 위에 달린 잎이 툭툭 떨어지면 과습일 수 있어요. 통풍이 잘 되게 해 주세요.


온도 : 겨울에는 5도 이상 유지해 주세요. 추위에 약한 편입니다.




©JeonghyunLee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식물 이야기는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