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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Oct 12. 2019

누구에게나 식물 이야기는 있다.

식물과 함께 하는 우리의 역사 - 아가베 아테누아타





아가베 중에 아마 제일 유명한 것은 용설란으로 알려진 아가베 아메리카나(Agave americana)일 거예요.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해서 백 년 식물(century plant)이라고도 불리지만 실제 수명은 10년에서 30년 정도입니다. 보통 10살이 넘으면부터 꽃을 피우는 게 가능해지는데 딱 한 번 꽃이 피고 나면 죽는다고 해요. 사진 속의 아가베는 그보다 훨씬 작은 종인 아가베 아테누아타(A. attenuata)입니다. 아가베속 식물을 용설란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아가베 아테누아타를 용설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가베 아테누아타는 다른 아가베들과는 달리 가시가 없고 꽃처럼 소담하게 피어나는 부드러운 잎모양이 우아해요. 특히 가운데에서 새 잎이 뾰족하게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엄청 길게 자라는 꽃대의 모습이 특이해서 여우꼬리, 사자꼬리, 백조의 목과 같은 별명들을 얻었죠. 하지만 역시 10년 이상 키워야 꽃을 볼 수 있다고 해요. 간혹 아래쪽 잎이 시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억지로 떼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들게 놔두셔야 줄기가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JeonghyunLee






글 쓰는 것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제가 그래도 어찌어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가 있습니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수영도 잘하고 술 먹고 욕도 잘하는 친구입니다. 글 잘 쓰는 이 친구는 제가 궁둥이 붙이고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해 시작한 글을 끝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말라붙은 저의 영감을 깨워주기 위해 식물과 관련된 자기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있는지도 몰랐던 식물 이야기들이 터진 이야기보따리처럼 친구에게서 술술 쏟아져 나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수다에 매진했었죠.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은 단순히 식물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에 매료된 감정을 넘어 그 안에 있는 더 깊숙한 무언가를 전달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그저 참신한 글 거리를 찾아 매끈한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잘 내려앉아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붙들어 두는 평소의 태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게도 해주었습니다. 


그 친구와 식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실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의외로 누구나 삶의 가까운 곳에 식물을 두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시골에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뼛속까지 도시 사람인 친구도 신혼집을 구경시켜 줄 때는 선물 받은 해피트리를 보여주면서 이름을 뽀글이라고 지었다고 좋아했고, 생물보다는 오래된 찻잔에 훨씬 관심이 많은 친구도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면 베란다에 있는 다육이들 걱정부터 합니다. 애 둘을 키우느라 영혼이 탈탈 털린 청소 여왕 친구도 부엌 한 켠 창문 앞에 스킨 답서스를 걸어놓고, 함께 들여왔지만 먼저 떠난 버튼 고사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요. 유학시절 주말이면 시내 클럽에 가기 위해 논문을 내려놓고 아이라인을 그리던 친구도 화장실에 있던 제라늄에 물을 주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선물 받은 식물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달에 한번 물 주는 것을 까먹지 않으려고 이름을 월급이로 지었다는 친구도 있지요. 모두들 초록색이면 식물이라는 것 외에 더 이상의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 아가베 아테누아타를  만나면 꼭 한참 서서 바라보게 돼요. ©JeonghyunLee






오랫동안 식물에 관심 없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물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 보니 세상은 식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네 집에는 엄청나게 큰 파키라가 하나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잎은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탄탄하고 굵직한 줄기를 가진 나무이지요. 지금 사는 집의 전에 전, 그리고 아마도 한번 더 전 집으로 이사할 때쯤 엄마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친구분들이 모아 주신 돈으로 받는 선물로 엄마는 이 파키라를 고른 것입니다. 예전의 저로써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 후 이사를 꽤 다니면서도 이 파키라는 우리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 우리 집의 역사를 함께 한 식물이란 생각이 들어 잎을 쓰다듬으면서 괜히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식물에 관심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제 기억 속 장면들에는 이 파키라가 늘 거실이나 베란다 구석에 서있었겠지요. 오빠와 제가 자라 집을 떠나고 둘이 된 엄마, 아빠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도시를 떠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있으니 식구라 해도 무리가 없을 식물입니다. 


엄마의 화단에는 외할머니의 집에서 가져온 식물들도 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집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엄마는 정말 수많은 물건을 버렸지만, 그중에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몇 가지들 중 하나이지요. 그 후로도 꽤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식물들은 엄마 집 화단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만지는 이 식물을 할머니도 만지셨겠지 하면서 식물들을 바라보지만, 제가 기억하는 이 식물의 모습이 외할머니의 집에서의 기억인지 아니면 엄마의 집에서 본 기억인지는 가물가물합니다.

식물 하고는 정말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분들도 혹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식물이 있지 않은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용설란처럼 꼭 오래 사는 식물이 아니더라도 식물은 늘 우리들의 역사 속에 함께 해왔습니다. 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밤이라도 이불을 덮고 누우면 살살 생각나는 식물이 분명 있을 겁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강아지 풀이되었든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이 되었든 마음속에 은근히 자리 잡고 있던 식물이 생각날 겁니다. 누구에게나 식물 이야기는 있으니까요.





하와이 길거리에서 만난 아가베 아테누아타예요. 기후가 잘 맞아서인지 길에서도 엄청 크게 잘 자라네요. ©JeonghyunLee







<아가베 아테누아타 키우기>



빛 : 다른 아가베 종과는 달리 여름철 강한 햇빛에는 약한 편이라고 해요. 평소에는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창가나 베란다에 놓아주시면 좋습니다. 가능하면 야외에 두어도 좋고요. 


물 : 속흙까지 다 마르고 잎이 처지는 듯해 보이면 흠뻑 주세요. 기온이 내려가거나 습할 때에는 물을 줄여 건조하게 키워 주세요. 과습에 약하기 때문에 물을 주고 난 후에는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해주셔야 해요. 통풍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도 : 보통의 실내 온도에서 잘 자라요. 겨울철에는 건조하게 유지한다면 5도 정도까지 견딜 수 있다고 하지만, 베란다보다는 실내로 들여주는 게 좋습니다.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Jeonghyu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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