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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Sep 30. 2019

식물은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요

식물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 - 필로덴드론 제나두






저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 방에서 보냅니다. 처음 이사 오면서부터 신중하게 계획해서 되도록이면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웬만한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방 안에 끌어들였지요. 덕분에 제 방은 수많은 물건들로 꽉 들어찬 복잡한 곳이었는데, 얼마 전 제 방에서 꽤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프린터를 처분했습니다. 프린터를 처분하는 것은 저의 오랜 숙원사업 중에 하나였고 그 거대한 프린터가 사라지면 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온갖 상상을 펼치던 저에게 프린터가 나가는 날은 축제의 날이었죠. 저의 게으름의 가장 큰 이유가 프린터 때문에 옹색해진 제 책상의 위치와 방향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저에게 이제는 생산성과 함께 삶과 일의 질을 높일 수 있게 가구 배치를 재편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창문의 방향과 시간에 따른 일조량의 차이, tv와 침대의 위치, 책상의 넓이와 의자의 크기, 동서남북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제가 과연 어디에 앉아야 좀 더 일을 바지런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일하는 자리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는가는 생계유지를 좌우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제 방은 몇 달째 프린터가 나가고 축제가 벌어지던 그 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JeonghyunLee






식물을 배치하는 문제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식물 전문가들이 식물을 처음 들여올 때나 식물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으로 꼽는 것은 의외로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긴 식물이 마음에 들고 그 식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앞서 내가 그 식물을 키우게 될 환경이 어떤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어디에 어떤 빛이 얼마 동안 들어오는지,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온도와 습도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세심하게 따져서 어느 곳이 이 식물에게 가장 이상적 일지를 결정합니다. 베란다도 다 똑같은 베란다가 아니라 시간대별로 온도와 빛의 양이 달라지는 것을 파악하여 창쪽과 안쪽을 나눕니다. 거실에는 빛이 몇 시간 들어오는지, 화장실의 습도는 어느 정도인지, 창문과 현관 앞의 온도는 얼마나 낮아지는지 등 집안 구석구석의 특징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식물의 종류뿐 아니라 식물의 키와 형태도 고려하여 최적의 장소에 식물을 배치하지요. 






©JeonghyunLee






전문가들이야 그렇다 쳐도 초보자들까지 뭐 그렇게 할 것 있나 싶지만 오히려 게으른 초보일수록 식물의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주기 힘들므로 처음부터 최적의 공간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물은 자기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적응하기 좋은 공간에 자리를 잡아 주어야 건강하게 살 확률이 높아집니다. 물도 아무 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물 주는 시간과 양을 달리 하듯 식물 고수들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더 알맞은 곳으로 식물을 옮겨주는 정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게 되는 것은 식물과 키우는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닌 식물의 모든 시간과 공간의 문제이니까요. 식물의 성격뿐 아니라, 식물이 살고 있는 공간을 꼼꼼히 이해하면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식물을 못 박아두지 않고 식물의 마음을 읽어 때에 따라 유연하게 적절한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온도나 일조량의 변화는 위험하기 때문에 야외에 있던 식물을 갑자기 방 안으로 옮긴다던지 실내에 적응한 식물을 바깥에 장시간 내어두는 식의 처방은 좋지 않습니다. 

식물을 가져오면 일단 빛 잘 들어오는 곳이나 내가 보기 좋은 곳에 놓아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도대체 왜 잘 안 자라는 건지 불만스러워하던 저는 이런 전문가들의 치밀함을 보며 부끄러워졌습니다. TV를 보다가 잠들기에 그만인 장소로 방을 꾸며놓고선 애꿎은 책상의 위치를 제 게으름의 원인으로 삼던 심보와 크게 다르지 않지요. 





©JeonghyunLee






필로덴드론 같은 식물은 저절로 ‘아, 저걸 어디에 두면 좋을까’ 고민을 하게 하는 식물입니다. 이렇게 잎이 많지 않고 긴 줄기 끝에 멋진 잎들이 몇 개만 붙어있는 키 큰 식물들은 어떤 공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더 쉽게 조형미를 뽐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배경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비실비실한 식물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해주면 그만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 줄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식물입니다. 이런 식물을 데려오면 덕분에 미뤄둔 집안 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단점 같은 장점이 있지요. 

식물의 배치는 어떤 공간에서 식물이 가장 건강할 수 있을지와 함께, 어디에 두면 가장 그 매력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하는 고난도의 문제입니다. 미뤄둔 방 정리와 함께 한 군데에 와글와글 모여 각자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저의 식물들에게 딱 좋은 자리들을 찾아주는 것도 곧 해결해야 할 숙원 사업임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JeonghyunLee





필로덴드론속 식물은 뿌리가 흙 위로 솟아 나와 있는 기근 식물인데, 줄기가 길다 보니 수분을 올리기가 힘들어서 뿌리가 아예 위로 올라와 수분 흡수가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요. ‘셀로움’과 ‘제나두(또는 크사나두)'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필론덴드론속 식물들입니다. 원래 제나두는 셀로움의 변종이나 교배종으로 알려졌었다가 최근에 두 개가 다른 종임이 밝혀졌습니다. 세렘, 셀렘, 셀룸, 원종 셀렘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셀로움은 최근 학명이 필로덴드론 비핀나피티덤(P. bipinnafitidum)으로 정해졌고요. 신종 셀렘이란 것도 있는데 아마도 제나두를 지칭하는 말로 보입니다. 둘 간의 복잡한 관계만큼이나 둘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둘 다 어렸을 때는 두리뭉실한 모양이다가 나이가 들 수록 잎이 깊게 파이며 둘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셀로움이 제나두보다 더 크게 자라고 잎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한 반면, 크사나두는 잎끝이 매끈해요. 제 추측으로는 저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필로덴드론은 제나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사진 속 식물도 제나두로 보입니다. 





©JeonghyunLee





둘 사이 차이를 보려고 셀로움의 사진을 보다 보니 어디선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어린 시절 집에 꽤 오랫동안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 식물이 셀로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다란 괴물의 손바닥처럼 생긴 잎이 신기해서 가만히 만져보던 촉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호프 셀로움이라는 종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셀로움의 교배종으로 키가 좀 더 작고 잎사귀의 가장자리가 더 자잘하게 파여있어요. 이렇게 줄기가 긴 식물들은 여리여리 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깔끔하고 느낌을 주어 식물을 키우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좋을 것 같아요.





©JeonghyunLee








<필로덴드론 제나두 키우기>


빛 : 그늘도 어느 정도 견디지만, 빛이 잘 들어오면 더 좋습니다. 밝은 그늘에 두시면 제일 좋아요. 한여름의 직사광선은 피해 주세요. 그늘에 두는 경우에는 통풍이 잘 되게 해야 합니다.


물 : 겉흙이 마르면 충분히 물을 주세요. 잎이 처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주시면 됩니다. 공중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니 건조할 때에는 잎에 물을 자주 뿌려주시면 좋아요. 뿌리가 젖어있는 것은 좋지 않아요. 겨울에는 물을 줄여 주셔야 합니다. 과습에 약하기 때문에 통풍을 잘 시켜주는 게 중요합니다.


온도 : 따뜻한 온도를 좋아해요. 건강한 상태면 추위도 어느 정도 견디지만, 겨울에도 15도 이상에서 키우시는 게 좋아요.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이정현포토그래퍼


      느릿느릿 사진찍는... 이정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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