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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Sep 18. 2019

식물과 사람이 함께 만드는 식물

접목과 철화 - 소정 철화 삼각주 접목 선인장






제 기억 속 처음으로 제가 스스로 골라서 산 식물은 자그마한 콩분에 담긴 미니 선인장이었습니다. 꼭대기에 꽃처럼 빨갛고 동그란 머리가 달려있어 엄청 귀여웠지요. 고등학생 시절 아마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어디에선가 충동적으로 사서 나를 위한 첫 식물이라는 생각에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지중지했었습니다. 모든 것에 감정이 충만했던 시절이라 그 당시 좋아하던 남학생의 이름을 따서 선인장의 이름을 붙여주고 내심 흐뭇해했었지요. 하지만 선인장에게 지나친 애정은 금물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때였기에 잊지 않고 물을 주겠답시고 욕조 한 구석에 놓고 물을 들이부어 가며 키웠고 당연히 며칠 지나지 않아 작은 선인장은 흐물텅해져 죽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선인장 이름의 주인공이던 남학생마저 바다 건너 나라로 훌쩍 이민을 가버렸고 아마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죽은 선인장을 보며 상당히 가슴 아파했던 것 같습니다. 




©JeonghyunLee





지금에서야 알게 된 그 식물의 정체는 비모란 선인장이었습니다. 삼각주 선인장 위에 빨간색이나 노란색의 비모란을 접목시킨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접목 선인장의 대표 주자입니다. 흙에 심겨 기둥 역할을 하게 될 선인장의 위쪽과 위에 붙일 선인장의 아래쪽을 잘라 서로 맞닿게 하여 한 몸이 되도록 만드는 접목 기술은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로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이 기술이 더 발전하여 해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다채롭고 멋진 형태의 접목 선인장을 많이 볼 수 있고, 전 세계 비모란 선인장의 7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것일 정도라고 합니다. 알록달록한 색의 비모란은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식물에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주 선인장에 접목하게 된 거죠. 이렇게 접목이 되면 아래쪽 선인장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어 전체 수명은 짧아지게 된다고 해요.




©JeonghyunLee






원래 접목 기술은 뿌리가 약하거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선인장들의 생명을 늘리기 위해 시도된 기술인데 지금은 독특한 모양 때문에 유행이 되어 여러 선인장들에 시도되고 있습니다. 아래쪽의 선인장이 위에 붙일 선인장보다 더 강해야 접목 후에도 살 수 있어 주로 원기둥 모양의 튼실한 선인장인 세레우스(체레우스, 케레우스)속, 에키노칵투스속, 에스포스토아속 선인장을 아래쪽 선인장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접목된 선인장은 아래쪽 선인장의 특성에 맞춰 키워주면 된다고 해요. 





©JeonghyunLee





제 첫 식물인 비모란 선인장의 정체를 알게 되기 전, 접목 선인장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건 바로 밍크 선인장이었습니다. 콩분에 심긴 미니 선인장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기둥 선인장 위에 말 그대로 밍크 털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가시로 뒤덮인 구불구불한 털 뭉치를 얹어 놓은 듯한 선인장으로 등장과 함께 원예계를 휩쓴 인기 식물이죠. 밍크 선인장의 아래 선인장은 보통 귀면각 선인장이고 위에 있는 털 뭉치는 소정이나 백섬 또는 백망룡 선인장의 철화입니다. 철화는 식물의 생장점에 유전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옆으로 확장되면서 원래 모양대로 자라지 않고 띠모양이나 부채모양을 만들며 비정상적으로 자라게 된 것을 말합니다. 덕분에 이게 정말 선인장인가 싶은 기묘한 모양의 선인장들을 만날 수 있죠. 밍크 선인장이라는 명칭 자체가 정식 명칭이 아니어서 비슷한 모양의 선인장들은 모두 밍크 선인장으로 불립니다.




©JeonghyunLee





접목과 철화 모두 선인장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접하게 된 식물 세계의 신비한 일들입니다. 두 개의 선인장의 한쪽 끝을 잘라 맞닿아 놓으면 한 몸으로 자라게 되는 접목이나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갑자기 희한한 모습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철화 모두 놀랍기만 합니다. 저는 접목 선인장과 철화 선인장 모두의 독특한 모습을 굉장히 좋아하고 어느 것 하나도 똑같지 않은 모양새에 마음을 뺏기곤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식물들에게 하는 이런 일들이 과연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인장 두 개를 잘라내어야 하는 접목은 말할 것도 없고, 철화 역시도 약품을 사용해 억지로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미안한 마음이 안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기왕 할꺼라면 사실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식물을 가져다 집안의 작은 화분에 심을 때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많은 플로리스트, 식물학자들이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읽으며 저같이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생각이 깊어집니다.




©JeonghyunLee





사진 속 선인장도 밍크 선인장처럼 접목과 철화 기술이 모두 동원된 식물입니다. 철화가 일어난 소정 선인장(Parodia scopa ‘Inermis Cristata’)과 삼각주 선인장(Selenicereus triangularis)이 절묘하게 접목되어 있지요. 소정 선인장은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철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도 동그랗게 모양이 변했습니다. 접목 선인장의 얼굴이 되어줄 딱 맞는 소정을 고르는 안목과 두 선인장의 생명을 홀로 책임질 튼튼한 삼각주에 안전하게 둘을 접목시키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위, 아래 선인장의 크기와 모양의 조화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나머지 마법은 식물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생명을 가진 식물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멋진 모양의 접목 또는 철화 선인장을 만나려면 최고의 기술과 함께 행운도 따라주어야 하지요. 어떻게 보면 인간과 자연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접목과 철화로 특별한 모양을 갖게 된 식물들을 보면 원하는 식물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온갖 기술을 동원하는 인간으로서의 미안함과 그런 인간의 자극에도 적응해 강한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에 대한 경이감이 함께 듭니다. 




©JeonghyunLee






<소정 철화 삼각주 접목 선인장 키우기>


빛 : 가끔씩 직사광선 아래 놓아주면 튼튼해지는데 도움이 되지만 뜨거운 여름에는 반양지에 놓아주세요.


물 : 성장기인 봄과 여름에는 물을 충분히 주세요. 하지만, 물을 한번 주고 난 후에는 흙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철화가 일어난 식물은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철화가 풀릴 수도 있다고 해요. 겨울에는 물을 거의 안 주셔도 좋습니다.


온도 : 추위도 어느 정도 견디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따뜻하게 10도 이상에서 키워주세요.





©JeonghyunLee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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