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겨울나기 - 삼지닥나무
한창 추운 겨울날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두꺼운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왔죠. 그런데 가장 늦게 온 친구 한 명이 얇은 코트 한 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났습니다. 여름에도 잘 안 끼던 선글라스를 이 겨울에 왜 끼고 나왔냐고 한 마디씩 하는 우리들에게 친구는 파래진 입술로 ‘너무 추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 대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고 그 친구는 자기가 왜 그렇게 추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아직 그렇게 춥지 않은 늦가을 누구보다 빨리 거위털 롱 패딩을 개시하여 애먼 땀을 흘리고 다니고,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여름날에는 허벅지에 빈틈없이 늘어 붙는 긴 가죽바지를 선택하며,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아침 우산 없이 출근하여 어김없이 비를 맞으며 퇴근하는, 날씨를 거스르는 여인입니다. 옆에서 지켜본 바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날씨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부족한 것인 듯합니다.
식물들은 다행히도 날씨에 대해 이 친구보다 훨씬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필요한 준비를 미리미리 하는 스타일이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계절에 맞는 신상 옷을 사 입거나 에어컨과 히터의 적정 온도를 맞출 수는 없기에 특히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을 키우는 주인은 식물들이 건강하게 계절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느 정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계절은 식물들에게 사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식물이 의지하는 햇빛의 양, 공기 중의 습도, 그리고 주변 온도가 모두 바뀌니까요. 식물은 달라지는 환경에 맞춰 활동 상태를 달리 해서 변화에 대처합니다. 따라서 계절이 변하면서 활동량이 달라진 식물에게는 물 주는 양과 주기도 다르게 해줘야 합니다. 물 주는 방법에 대해 찾다 보면 많은 전문가들이 며칠에 한 번씩으로 물 주는 시기를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물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과습에 약한 다육이는 더욱 그렇죠. 똑같은 물의 양과 주기가 어떤 계절에는 맞지만 어떤 날씨에는 과하거나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그 차이는 안타깝게도 점점 더 극단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하죠. 당연히 여름과 겨울에 식물을 돌보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고 식물들을 위해 현명하게 그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맞아 식물들이 겨울을 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어울리는 전나무, 구상나무와 같은 식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땅하나 저는 사진 속 이 식물, 삼지닥나무(Edgeworthia chrysantha)와 함께 겨울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앙상해 보이는 가지 끝에 달린 보슬보슬한 꽃이 꼭 눈송이 같기도 한 것이 이보다 더 겨울 분위기가 나는 식물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삼지닥나무는 가지 끝이 세 개로 갈라지는 닥나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재배하던 나무였지만, 요즘은 관상용으로 많이 기른다고 해요. 그만큼 멋진 모습을 가진 나무이지요. 왠지 눈 덮인 하얀 들판에 이 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 모습을 보면 시조 하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정취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삼지닥나무의 꽃은 겨울을 다 보내고 난 후 3~4월경에 잎보다 먼저 핀다고 해요. 잎이 안 달린 나무에 꽃만 달려있는 이런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봄철이죠. 그러니 계절에 맞지 않는 감성을 고집하는 걸로 치자면 저도 제 친구를 마냥 놀려댈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겨울은 대부분의 식물들이 활동량을 낮추는 때입니다. 기온이 낮아지고 햇빛의 양이 적어지면 식물들은 잎에 있는 양분들을 뿌리로 보내고 뿌리의 활동을 둔화시켜 물도 조금만 빨아들인다고 합니다. 광합성을 통한 성장을 멈추고 필요한 성분들을 저장하기 시작하죠. 이렇게 준비를 해야 온도가 떨어지면서 흙 속의 수분이 얼어 뿌리가 죽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활동을 줄이고 푹 쉴 수 있도록 물의 양을 줄여주어 다소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잎이 무성한 관엽식물들은 대부분 1년 내내 따뜻한 아열대 지역에서 살던 식물이라 원래는 온도 변화에 따른 휴면기가 따로 없고 달라지는 비의 양에만 반응한다고 해요. 그러나 겨울에 온도가 내려가는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겨울 대비를 해야 하죠. 그래서 물 주는 횟수를 줄여 성장을 둔화시켜서 휴면기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겨울을 잘 보내야 이듬해 봄에 더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실내에 난방을 하는 경우는 공기가 심하게 건조해질 수 있으므로 너무 건조하다 싶으면 잎 부분에 살짝 물을 뿌려주는 것도 좋다고 해요. 난방기구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을 바로 맞는 것도 식물에게는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하고요.
물의 양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겨울철에 성장하는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완전히 잠을 자는 식물들보다는 물을 더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안됩니다. 짧은 시간 저면 관수를 하는 게 좋다고도 해요. 또 물 주는 시간대도 신경 써야 합니다. 저녁때 주면 온도가 떨어지는 밤 사이 물이 얼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햇볕이 있는 하루 중 가장 따뜻한 낮 시간에 물을 주는 게 좋고 너무 추운 날씨가 계속될 때는 오히려 안 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해요.
봄, 가을이나 여름에 성장하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겨울에는 성장을 멈추고 잠을 자니까 변화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에 물을 주면 물이 흙에 그냥 고이게 돼서 썩어 버릴 수도 있죠. 그래서 단수하는 게 좋지만 식물의 상태를 살피면서 꼭 필요하다 싶으면 따뜻한 날을 골라 주셔야 한다고 합니다.
겨울이라고 햇빛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낮에는 창가에 두어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밤에는 창가 온도가 뚝 떨어지니까 안쪽으로 옮겨주시는 게 좋습니다. 실내가 아닌 베란다처럼 조금 추운 곳에 있다면 밤에만 실내로 들이거나 신문지를 덮어준다거나 하면 밤사이 얼어붙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해요. 역시나 식물의 건강을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추위로부터 보호한다고 햇빛이 필요한 식물을 갑자기 방 안으로 들여 두면 빛도 부족해지고 난방 때문에 건조한 실내에서 통풍까지 안되면서 오히려 식물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료를 준다거나 분갈이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생장의 파워가 넘쳐흐르는 봄이나 가을로 미뤄두는 것이 좋습니다. 잎이 다 떨어진 식물들을 보면 겨울이 쓸쓸한 계절인 것만 같지만 사실 새로운 생장을 준비하기 위해 최소한의 것만 남겨놓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시기로 식물의 진짜 능력이 발휘되는 계절이라고도 해요.
겨울 추위가 물러갈 때쯤 삼지닥나무의 가지 끝에 꼬물꼬물 꽃봉오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겨울을 삼지닥나무가 잘 보냈다는 증거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꽃은 향기도 무척 좋다고 해요. 저는 아직 꽃이 다 피지 않은 때 만나서인지 향은 맡아보지 못했어요. 쉽게 만나기 힘든 식물인 만큼 혹시 꽃이 핀 삼지닥나무를 보게 되신다면 꼭 향을 맡아보세요. 겨울이 남기고 가는 참 근사한 선물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역시 시를 부르는 나무입니다.
<삼지닥나무 키우기>
빛 : 햇빛이 많은 곳이나 살짝살짝 그늘이 지는 곳에서 키워주세요.
물 : 흙이 촉촉하게 유지되도록 신경 써서 물을 주세요. 겨울철에도 물을 주어 흙이 완전히 마르지 않게 해 주셔야 해요. 하지만 물이 잘 빠지도록 해주시는 게 매우 중요해요.
온도 : 온도가 따뜻한 걸 좋아해요. 야외에서 자라는 나무는 다른 조건이 좋으면 영하 5도나 그 이하도 견딘다고 하지만, 실내에서 키우는 경우라면 겨울에는 베란다 정도의 온도가 적당합니다.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