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얼마 전 사촌 언니네 아파트에 놀러 갔다가
문득 창밖을 보게 되었다.
옥상 위에 장독대를 올려둔 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한때는 집집마다 당연히 있던 항아리와 장독대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변해가는 집의 형태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공간이 있다. 장독대다.
장독들이 모여 있는 공간.
하지만 장독대는 단순히 장독만 모아 둔 장소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밤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던, 집 안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
‘장맛이 단 집에 복이 많다’,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
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장은 집안에서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장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정성과 시간, 그리고 계절을 모두 품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금의 간수를 빼고,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그고 가르고, 날씨에 따라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사람의 손과 자연의 시간을 함께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아파트와 원룸 중심의 주거 형태,
변해가는 가족 구성 속에서 장을 담글 공간도,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를 둘 자리도, 함께 장을 나눠 먹을 가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성장해 온 환경과 시대만 해도 집에서 장을 만들어 먹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아마 지금도 할머니가 계신 분들에겐 각자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장맛’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집을 고를 때 장독대를 놓을 자리 또한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옥상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다.
우리 집 옥상에는 장독대가 있다. 지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장독 속은 비어 있고, 몇 개의 항아리만 조용히 남아 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항아리에 다시 장을 채우고 싶다.
장과 장독대는 단순한 양념과 공간이 아니라,
집집마다의 추억이 함께 익어가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