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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소운
Oct 16. 2024
마지막 숙제
초등학교 입학 전
,
외가에서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다
.
어느 날
,
외할머니와 함께 동네 우물가의 집을 찾아갔는데
,
주인이 외출 중이었다
.
돌아 나오며 할머니는 벽에 걸린 그림 액자를 가리키셨다
.
“
저 그림을 그린 분은 우리 집안사람이야
.
국전에서 대통령상도 받았고
,
그림을 정말 잘 그리셨지
,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셔
.”
나는 초등학교 시절 생활통지표를 여전히 모아두고 있다
.
가끔 꺼내 볼 때마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 1
학년 가정통신란에 적힌 한 문장이다
.
‘..
특히
,
미술에 능숙합니다
.’
부모님 외에 내 그림 재능을 인정해 준 첫 사례였다
.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군
(
郡
)
종합 학예발표회 사생화 부문에서
5, 6
학년 연속 특선을 차지했다
.
형제 중에서 유독 나만 이러니
,
외가 식구들의 재능 유전자를 독차지한 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
중학교는 부산에서 다녔다
.
방과 후 친구랑 미술부에 등록하려 갔다가 봉변
(
몽둥이 얼차려
)
을 당한 적이 있다
.
“
그림 배울 생각일랑 다시는 하나 보자
!”
부모님이 하라는 공부나 하지 그림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결기를 다졌지만
,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가 앞선다
.
영국의 학자 매트 리들리는 저서
『
본성과 양육
』
에서 말했다
. ‘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이 만든 것을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
’
그때 좋은 미술 선배나 자상한 여선생님을 만났더라면
,
나의 천부적 재능이 한껏 만개했을지도 모른다
.
군대 갈 무렵이었다
.
고향에서 산수화가 그려진 연하장을 발견했다
.
재미 삼아 켄트지 전지에
4HB
연필로 그려보았다
.
아버님께서 보시더니
,
어느 날 표구까지 하여 방문 위에 걸어놓으셨다
.
습작임에도 그렇게 흐뭇해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
80
년대 초반
,
부모님이 대만 여행을 다녀오시며 내게 뜻밖의 선물을 주셨다
.
중국어로 된 산수화 기법 책과
12
색 물감인 봉채였다
.
그 무렵 나는 서울의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
이제는 간간이 그림도 그려보라는 부모님의 속 깊은 배려가 선물 되어 내 가슴에 안겼다
.
그럼에도 나는 그림을 배워보려는 의지가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
핑곗거리가 거미줄처럼 시야를 가릴 뿐이었다
.
십여 년 전 귀향할 때라도 부모님 앞에 봉채로 채색한 산수화 한 폭을 보여 드렸더라면
,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
부모님 살아생전에 자식 둔 뿌듯함과 만면에 피어나는 웃음꽃을 드리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
지금이라도 그림을 배워보려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숙원이 있기 때문이다
.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는 가치를 창조하고
,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
무의미한 것에 시간 허비하려는 타성을 극복하기 위함이 그 두 번째 이유다
.
마지막 숙제라는 마음으로
붓을 잡아
본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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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자기계발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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