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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an 13. 2021

집행유예

 차창을 조금 내리니 새벽 찬 기운이 밀치고 들어왔다. 이 지방에도 눈이 온 듯 하지만 많은 양은 아닌 것 같았다. 먼 산자락과 들녘의 응달에만 잔설이 보일 뿐이다.   

  

 시계는 아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설을 본가에서 쇠려 17시간은 족히 달려온 셈이다. 그 많던 차량들, 미어터지던 고속도로를 벗어나다 보니 온몸은 파김치가 돼 있었다. 그래도 지난 추석 때 24시간에 비하면 준수한 편이었다. 아직 1 시간 가량 더 가야 고향에 도착할 수 있다.

“자는 애들에게 찬바람은 안 좋아요.”

곁에 아내가 깬 줄 몰랐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아스팔트는 비가 온 듯 촉촉이 젖어 보였다. 평지를 지나자 오른편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얼마 후 도로는 30도가량 왼편으로 휘어졌다. 커브 오르막길이기에 가속, 브레이크 모두 발을 떼고 여분의 속도만으로 좌회전하려는 그때!

 이상한 징후가 감지됐다. 뒷바퀴가 원심력에 의해 바깥쪽으로 살짝 밀리는 게 아닌가. 동시에 차 하체부에서 올라오는 섬뜩한 소리.  

‘쏴르르..’

소름이 돋았다.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살짝 올렸다.

“이런!”

 이번에는 차량 전체가 도로 오른쪽으로 주~욱 밀렸다. 도로 가장자리는 한 사람이 다닐만한 넓이에 흙, 돌멩이 그리고 잔풀들이 뒤섞인 길. 연약한 가로수 두세 그루. 그 아래는 보이지 않고 멀리 바다와 산만 보일뿐이다.

   

 오른편 앞뒤 바퀴가 모두 아스팔트를 벗어나자 둔탁한 음이 하체부에서 들렸다.

“여~보! 왜 이래요?”

 아내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 외마디 소리에 자던 아이들도 깨어났다. 나는 왼쪽으로 꺾은 핸들만을 꽉 잡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이외로 담담했다. 죽음과 담판을 짓자.     

 

‘그러면 놓아버리자!’

 안 떨어지려고 꽉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순간, 날뛰는 투우처럼 좌측 사선 방향으로 쏜살같이 넘어갔다. 급히 핸들을 반대로 꺾어, 간신히 제 차선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까지 좌측 시야는 블랙아웃 상태였다. 시선은 오로지 우측, 상황이 발생하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큰 충돌사고까지 날 뻔했다.

     

 현장을 조금 지나서 차를 세웠다. 혼비백산한 넋이 온전히 되돌아오기 기다렸다.   

 

 기억을 되짚어봤다. 연사 기능이 있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어 보듯이 또렷하게 재생되었다. 불과 4~5초 사이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훨씬 더 걸린 것처럼 착각이 들었다. 또한 극한 상황에 어쩌면 그렇게 대담했을까. 의문투성이다.    


 한사코 만류하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차를 돌려 그 자리에 다시 가 보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장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왼쪽으로 휘는 도로면은 이외로 평지에 가까웠다. 판단의 오류였다. 같은 경사 각도로 읽어 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도로 위에 젖은 것 또한 비 아닌 살얼음, 블랙 아이스였다. 도로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족히 십여 미터쯤 돼 보이는 축대 아래 황토밭이 혐오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현기증이 났다.    


 삶과 죽음은 도로와 밭처럼 붙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온다. 다만 그 집행만을 유예할 뿐. 어느 탁견이 떠올랐다. 총각 시절에도 차량 전복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또 무슨 연유로 집행을 유예한 것인가?    


 판결 전문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집행유예에 처한다.’는 <주문>만 밝혔다. 판결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이미 내게 그런 능력이 있으니 스스로 소명해보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유예기간은 왜 빠졌을까? 내가 교만에 빠질까 봐? 아니면 조물주의 실수 중 하나다.     

 

 고향집 앞에 도착했다. 내려서 보니 범퍼, 펜더 하단부에는 눈얼음과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먼 여정이 험로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보닛과 루프에 얼어붙은 눈보라 긴 자국들. 저승사자가 할퀴고 간 양 남아 있었다. 먼저 온 동생이 마중을 나오며 말했다.

“이야~ ‘Back To The Future’에 나오던 차네!”

혹한을 뚫고 느닷없이 남쪽 지방으로 날아온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한 술 더 떠서 맞받았다.  

‘ 그러지 마. 미래로 빨리 갈 뻔하다 되돌아온 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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