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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an 16. 2021

어느 노모의 눈물

 늦가을 새벽 공기는 스산했지만 실내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이층에 자리한 이곳은 에어로빅, 발레도 하는 다용도 공간이다. 조명을 다 끈 실내에는 명상 음악이 흐르고, 진도에 맞춰 행공(行功)을 바꿔가는 이들의 옷자락 소리가 진중함을 더했다.     


 나는 회원들 사이로 천천히 오가며 호흡과 자세를 살폈다. 우리 단지 주민들이 대다수지만 타 단지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도 그 한 예다. 인근 암자에서 소문 듣고 오신 분이다. 지도함에 있어 늘 조심스러웠다. 스님 옆에서 수련하는 할머니는 스님의 속가 생모이다.   

 

 노모를 유심히 지켜봤다. 미간과 어깨선뿐 아니라 가슴, 아랫배가 부조화를 보이고 있었다. 딴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게 분명했다.

“어르신 잠깐만요.”

 나지막하게 말하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분의 손을 잡고 복도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로 나왔다. 일흔 중반의 노모는 연세보다 주름살이 많아 보였다. 불려 나온 이유를 아는 듯 겸연쩍게 웃는다.

“그래요, 따라 하기 힘드시죠?”

“네에, 선생님 시키는 대로 잘 안 돼요.”

 느리고 쉰 목소리에 고단했던 지난날들이 켜켜이 묻어났다. 나는 가벼운 웃음을 띠며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어르신, 제 말씀을 잘 듣고 나서 자리에 돌아가 해 보세요.”

 나는 호흡하는 요령을 다시 설명해 드렸다. 말하는 중에 이미 노모는 눈을 감고 따라 해보고 있었다.   

  

 두세 번 해보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런데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 눈망울에는 뭔가 딴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게 뭘까?

“선생님, 자꾸만 딴생각이 떠올라요. 어떻게 해요?”

“어떤 생각인데요?”

“...”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내가 대구에 있을 때 이 시간이면 새벽기도를 해요.”

“기도?”

“선생님 시키는 대로 잘 안되면 나도 모르게 기도 할 때가 많아요. 우리 집안은 모두 교회를 다닌답니다.”   

 

 노모가 노구를 이끌고 딸(스님)이 있는 암자를 찾아온 것은 단지 딸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틀쯤 지나서 돌아가려고 하니 스님이 만류하였다. 건강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고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최근에 하는 운동이 있으니 같이해서 몸이 좋아지면 그때 내려가라고 노모를 설득했다. 스님도 퇴행성관절염, 척추 디스크 등으로 몸이 다소 불편했다.

 스님과 같이 지내며 노모는 생각에 잠기는 날이 많았다. 이번 기회에 가슴속 한을 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본인의 여생도 만만치 않으니 이제 스님을 용서하고 화해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무슨 책을 그렇게 밤낮으로 읽던지, 도서관에서 준 다독상인지 뭔지 하는 상장들이 지금도 있어요. 스님이 맏인 데다가 영특하여 E여대를 다닐 적에만 하더라도 내 마음이 그렇게 뿌듯하더니만.. ”

  마음을 다잡는 듯 잠시 머문다. 출가를 결행한 스님도 그렇지만 모친의 마음고생이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무거운 짐을 더는 버티지 못해 풀고 있었다. 봇물이 터지듯 내려오다 모난 돌부리에 부딪치면,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가 다시금 휩쓸고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격정의 돌부리에 그만 몸서리를 치고 만다.     

  

“말이라도 하고 갔으면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지. 며칠 있다가 돌아온다는 편지만을 딸랑 남겨놓고 훌쩍 떠나버린 것이 얼마나 괘씸하던지. 어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

“말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절을 찾아 가보니,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있데요. 기가 꽉 막히고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걸 누가 알까!!”    


 숱한 나날들, 가슴은 숯검정만 남았을 법한데 눈언저리에 물기가 서린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라 했던가. 하얗게 바랜 머릿결에는 지나온 불면의 고통이 투영되고, 멍에를 내려놓으려는 어깨는 가볍게 떨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에 창밖을 내다봤다. 먼동이 트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서서히 드러난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그리고 스님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몸부터 추스른 후에 아들 집에 내려가도록 하세요. 늙어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본인의 건강이라 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건 그래요.”

“이른 새벽에 여기까지 오셨으니 수련을 할 때는 다 내려놓고 하셔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모는 무거운 지게 짐을 벗어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이후 노모에게는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스스로 25개 행공 동작을 해 나갈 정도로 기억력도 좋아졌다. 환한 표정을 보는 날이 많아졌고 걸음걸이도 예전보다 나아 보였다.    


 나는 이 모녀를 계속 지켜보지 못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그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아빠! 수박 드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거실에서 아내와 어린 딸이 수박을 자르고 있었다.

“아빠! 왜 그렇게 봐요?”

“아니야, 아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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