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지막 춤사위

by 소운

회사원 시절, 음악이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큰맘 먹고 오디오 컴포넌트를 장만했다. 양옆으로 놓인 2 Way 대형 스피커가 존재감을 뽐냈고,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틈틈이 사 모은 LP 중엔 김영임의 《회심곡》도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맥주 한 잔 곁들이며 그 음반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회심곡》은 서산대사가 불교 교리에 사설을 붙인 곡이라 들었지만, 종교적 색채와 꽹과리 소리가 굿판처럼 느껴져, 한동안 외면했던 음반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끝까지 듣고 난 뒤, <부모님 은혜> 부분만 다시 돌려 들었다.

‘석 달 만에 피를 모으고/ 여섯 달 만에 육신이 생겨/열 달 만삭을 고이 채워/ 이내 육신이 탄생을 하니..’

이어지는 부모님의 공력을 하나하나 읊는 대목, 특히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에 이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풀 먹인 삼베 적삼이 살결을 스치듯 거친 음색은 애절함을 더했다. 나는 술자리를 대충 치우고, 거실 유리창 앞에 한동안 서성였다.

세월이 흘렀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위중하셨던 어느 날, 중환자실에 모시고 있던 일이 있다. 6인실 병실에는 팔구십 대 노인들이 침상마다 누워 있었고, 온갖 모니터의 비프음과 주사액 관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간호사실을 다녀오는 길,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TV 소리도, 기계음도 아니었다. 어머니 곁에 앉아 출입문 쪽을 바라보니, 옆 침상의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상반신을 비스듬히 일으킨 채, 굽은 무릎과 벌어진 팔이 허공을 감싸 안으려는 듯했다.

할머니 오른쪽 귀 옆, 휴대폰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간병인일까, 면회 온 가족일까. 마지막 이별을 앞둔 엄마에게 애창곡을 들려주고 싶었을 그 살가운 마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래도 딸이지 싶었다.

구순이 넘었을 듯한 할머니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달픈 삶의 밑천으로 버텨온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검게 그을린 피부 위로 검버섯이 내려앉고, 쇠약해진 몸은 이미 기력을 잃은 듯했다. 그때 굳었던 두 팔이 민달팽이처럼 느릿하게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마른 목젖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노랫가락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세상과 작별을 준비하는 그 길, 덧없는 인생을 몸에 밴 움직임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노래를 들려준 이의 마음, 늙은 몸의 춤사위, 노랫말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나는 몰랐다. 이토록 애잔하고 한스러운 가락이었는지를.

소리에도 지문이 있다고 했다. 지라에서 용틀임하듯 거칠게 끌어올린 목소리. 그건 《회심곡》으로 나를 울렸던 김영임의 또 하나 우리 가락.

바로, 〈구 아리랑〉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벌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