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시선의 철학

by 소운

나폴레옹이 인접국을 정복한 뒤, 어느 성당에서 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눈가가 젖은 황제를 본 부관이 물었다.

“어찌하여 눈물을 보이십니까?”

“자네 눈에는 저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자넨 그럴 수 있지. 내가 정복한 땅은 칼끝이 빛날 때만 유효하지. 하지만 저 그림을 그린 자의 세계는 오래 남을 거야. 내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우리 집에도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예술품이 있다.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을 탁본한 표구이다. 남동생이 경주 신혼여행에서 가져온 선물로,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좌우 쌍으로 받은 탁본 중, 나는 왼쪽으로 보고 앉은 비천상을 골랐다. 박봉의 평사원 시절이었지만, 이중 액자 표구를 주저하지 않았다. 액자를 찾는 날, 사장님이 어깨너머로 너스레를 부렸다. “남은 한 폭마저 표구해 두어야 다음에 제대로 된 값을 받습니다.”


시간이 흘러 약간의 오염은 생겼지만, 리모델링한 2층 하얀 벽면 중앙에 걸린 그 액자는, 이제 작은 갤러리 같다. 천이백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신라 금속공예의 정수는,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비천상은 천인(天人)이 부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음악과 꽃을 공양하는 모습이라 한다. 종신(鐘身)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비천은 보상화에 둘러싸여 무릎 세우고 연화좌에 앉았다.

양손엔 긴 손잡이가 달린 향료를 들고 있는 듯하고,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신종 소리에 이끌려 황급히 내려오는 듯한 형상이다.


며칠 전, 탁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오는 영락과 옷자락이 교차하며 배열되어 있다. 마지막 옷자락은 옷고름인지 불분명하지만, 유독 말린 형태가 눈길을 끌었다. 농악의 상모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시선을 그림 가운데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 순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종신에 새겨진 다섯 단락의 명문 중 첫머리는 이렇게 전한다. ‘무릇 지극한 도는 ··· 신령스러운 종을 내걸어 일승의 원음을 깨닫게 한다.’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종소리로 대신한다는 취지인 셈이다.

여섯 가지 공양물 중 향을 선택한 비천상의 의미는 뭘까? 후각은 기억의 깊은 층위인 해마와 편도체에 직접 연결된다. 세상의 진리가 종소리에 실려, 향처럼 기억의 심연 속으로 스며들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물론 불교에서 향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존재. 희생과 정화, 해탈의 상징이기도 하다.

간혹 반대쪽(우측)을 보고 앉은 비천상을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이미 익숙함 때문일까. 아니면 오주석 선생의 말처럼 우리 선조들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림을 읽는 시선 탓일까. 왼쪽으로 향한 내 표구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은 수차례 멸실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8세기 신라인의 차원 높은 철학과 사유는 파편을 넘어,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한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서화가, 저암 유한준의 발문이 문득 떠오른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하는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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