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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담장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by 소운

앞마당 잔디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잔디를 깎느라 애를 썼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계절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당 끝자락의 나무들을 살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다가 금목서, 은목서 앞에 멈췄다. 가을 늦게 피어 고혹적인 향기를 뽐내던 녀석이지만 성장이 더뎌 늘 마음이 쓰인다.

잎을 모두 떨구고 잔가지만 남은 미스김 라일락이 나를 올려다본다. 작은 키지만 몸매는 야무져, 앉은자리가 넉넉하다. 문득 생각이 인다. 식물자료 정리를 도와주던 타이피스트 김 양도, 미국인의 눈에는 이처럼 보였던 것일까.

그다음으로는 사철나무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앞집 사람들이 단층 옥상을 오르내리며 우리 집안을 내려다보기에, 관상용보다 담장용으로 심어 둔 나무다. 가지마다 콩알만 하게 맺혔던 열매들은 어느덧 새빨갛게 익었고, 팝콘처럼 터진 것도 보였다. 왕 매실나무와 대봉감나무를 더 심어 울타리를 두툼하게 만들었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앞집과 담장이 없는 건 아니다. 높이 1.2m 남짓한 시멘트 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잔디 마당은 예전 독거노인이 살던 슬레이트 가옥으로, 매입 후 철거했다. 페인트 마감이 되지 않은 담장은 군데군데 이끼와 곰팡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용을 들여 도색하기보다 관상용 나무로 가려보기로 했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지만, 나무의 성장은 더뎠고 담장의 검푸른 이끼는 더욱 기세를 부렸다. 하다못해 소매를 걷어붙이기로 했다.

해라와 쇠 브러시로 이물질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파인 홈과 균열은 퍼티로 메웠다. 백색 외장용 수성페인트를 롤러와 붓으로 칠해나갔다. 오후에 한 번, 다음 날 오전에 한 번, 다섯 시간 뒤 오후에 또 한 번. 세 차례 거치자 하얀 발색이 확연히 달라 보였다. 작업 도구를 거두고 현장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해졌다.

담장 도색 작업을 한다고 하니, 딸은 그림을 그려 넣거나 감각적인 인테리어 벽화를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림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인데, 괜한 소리 말라고 일축했다.


저녁 식사 후, 거실 창가에 다가서니 테라스 LED 센스 전등이 바람에 켜져 있었다. 그 빛에 어둠이 밀려나고, 담장은 새하얀 영사막처럼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들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화선지 위 수묵화처럼 살아 움직였다. 우중충하던 사철나무와 왕 매실나무의 가지까지 입체적으로 되살아나,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만약 그 위에 어설픈 그림을 얹었다면 혼돈과 부조화로 조경을 망쳤을 것이다. 비우고 걷어낸 절제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무들은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단지 한두 발치 뒤에서 담장이 하얗게 바뀌었을 뿐인데, 줄지어 선 나무들은 비로소 나무답게 되살아났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젊은 회사원 시절이 떠오른다. 사석에서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던 옛 동료들이 있었다. “공부를 좀 더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조건 없이 나를 드러나게 해 주려던 그 선한 마음 씀씀이들이, 하얀 담장에 영사되듯 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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