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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10. 2021

예비고사 뒤풀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오니 각 방마다 조용했다. 학교에서 다들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이불에 기댔다. 오늘 받은 예비고사 성적표는 모의고사 때보다 좋게 나왔다.

‘고등학교 3년도 이제 끝이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웅크렸던 몸이 온기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얼마나 잤을까. 방문이 열린 듯 찬 공기가 밀치고 들어왔다.

“야! 의리도 없이 혼자만 오냐?”

 실눈을 떠보니 반 친구들이었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알고 왔지?’

“겨우 찾아왔는데 자는 척 해?”

 더 이상 잠자기는 글렀다 생각하고 일어나 앉았다.  

  

 예비고사 성적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영수가 이외로 낮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었다.

“이 점수 갖고 어디 내놓겠나, 3년 농사 이게 뭐꼬? 미쳐 버리겠다 아이가!”

“그래 대관절 몇 점 나왔는데?”

 내 물음에는 대답을 안 한다.

“야, 가락국수나 먹으러 나가자.”

 두 녀석은 가방을 챙겨 따라나선다.  

  

 분식집에 빈자리가 없었다. 바깥 날씨는 쌀쌀하고 찬바람이 계속 불었다. 길거리에 선채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영수가 제안을 했다.

“그냥, 우리 태종대나 가보자. 답답하기도 한데.”

 나는 웬만한 더위는 참고 견디어도 추위는 질색이었다. 바람이 잦은 태종대 겨울은 내겐 기피지역이었다.  

   

 그날도 추운 날씨 탓인지 오가는 이들이 드물었다. 우리는 갯바위 사이를 비집고 내려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에이 씨!”

 옆에 있던 영수가 갑자기 웃옷을 벗기 시작한다.

“너 뭐하니, 설마 저기 뛰어들어 갈라꼬?”

 마지막 내의까지 벗어 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슴에 두세 번 물을 적시더니 알몸으로 넘실넘실 헤엄쳐 나간다. 우리는 갑자기 벌어진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우직한 성품이긴 해도 사고 칠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차지 않던가.


 십여 미터 헤엄쳐 들어가다가 작은 바위 앞에 머물며 고함을 쳤다.

“야! 너들 뭐하노, 들어와 바!”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재철이는 강단이 있는 애였다.

“허허! 그러지 뭐..”

 마지못해 옷을 하나 둘 벗는다. 마지막 내의에 손이 간다.

“야! 제발 그것만은 입고 가.”

 내 말에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떨어진 갯바위 위에 여자 서너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엄동설한, 뜻밖의 눈요기에 난리였다. 눈이 마주치자 일제히 딴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야 인마! 저기 여자들이 보고 있어!”

 친구들은 보려면 보라는 듯이 유유히 헤엄쳐 와서 물 밖으로 나온다. 의기양양하던 녀석들은 입술이 시퍼렇게 변했다. 온몸에 소름이 닭살처럼 돋아나고, 그 뭐.. 형색은 말이 아니었다. 옷을 대충 입자마자 부근에 있던 포장마차로 뛰어갔다.    


 뜨거운 어묵 국물과 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두 녀석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 살만한지 한 녀석이 너스레를 떤다.

“우리 몸을 훔쳐본 그 여자들 찾아 가볼까?”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웃기네! 볼 것 다 본 여자들이 뭐가 아쉬워 미팅에 응하겠노?”    


 껄껄 웃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그 날 태종대 풍광은 고스란히 나의 액자 속에 담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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