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Mar 15. 2021

콩밭 매는 나그네

 귀향해 보니 타지에 계시는 숙부님의 오래 묵힌 밭이 있었다. 예전부터 검은콩을 키워 보고 싶었다. 서리태는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라 흑태와 약콩을 택했다. 봄에 검정 비닐로 멀칭을 하고 구멍마다 준비한 콩을 넣었다. 준비란 살균과 조류 기피 효과가 있다는 ‘새총’의 빨간 약물에 묻혀서 말린 것을 말한다.

 새 하나, 벌레 하나 그리고 인간 몫 하나 해서 3개씩 파묻는다. 오호! 천지인이라. 나는 여태껏 모음 창제 원리로만 알았다.  


 십여 일 지나면 발아하는데 가관이다. 콩 대가리마다 빨간 털모자 하나씩 쓰고 나온다. 모자가 바람에 날렸다 하면 새가 집중 공략을 하는데, 그놈 때문에 애꿎은 옆 친구까지 참상을 당한다. 수확도 그렇지만 이 여린 순을 관찰하는 게 좋았다. 여리게 보이지만 속으로 모시처럼 질기고 굳건한 생명의 힘을 느꼈다.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면 탱탱한 기운이 내 신경 끝자락에 올라탄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한두 달 후부터 고랑마다 잡초가 기승을 부린다. 동네 사람들은 제초제를 뿌리지, 사서 개고생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농약이라니? 나는 친환경으로 한다고 고집했다.

 잡초를 호미질하고 나서 며칠 뒤 가보면 또 자랐다. 잡초만큼 무서운 게 없다지만 사실은 잡초에겐 사람이 천적이다. 밭농사를 전업으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역사회 몇 개 단체에 강사로 활동하면서 짬이 나는 대로 밭일을 했다. 비가 며칠 오면 고랑이 질퍽해서 들어갈 수 없고 그 사이 잡초는 기를 쓰고 자랐다.   

  

 240평 정도만 콩을 심었고 나머지 20평은 참깨를 심었다. 비닐 멀칭은 같지만 콩처럼 앉아서 참깨를 세지 않는다. 박카스 빈병 뚜껑에 못 구멍을 내고, 깨를 담아 양념 치듯 툭툭 집어넣었다. 발아해서 한 뼘 정도 올라오면 서너 개 남겨두고 가위로 잘랐다.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그랗고 빨간 쿠션인데 엉덩이에 대고 앉는  있다. 깔고 앉아 호미로 콩밭 잡초를 매고 또 맸다. 일이 끝도 안 보이면,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하나 바보와 같은 자문도 해봤다. 아내는 부모님 케어 때문에 자주 오지 못했다.     


 한여름에 콩 줄기가 마르기 시작하면 뿌리 채 뽑았다. 승용차로 옮겨 집 이층 옥상에서 말렸다. 어릴 적, 큰집에 가면 마당에 말린 콩 줄기가 펼쳐져 있고 삼촌이 도리깨질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콩 타작을 그렇게는 할 수 없어 발로 밟고 막대기로 두드렸다. 한낮 더위에 비지땀을 흘려가면서.     


 마지막으로 키질을 해서 콩깍지를 털어내야 하는데, 몇 번 도전 끝에 포기했다. 내게는 고난도였다. 그냥 부는 바람을 이용했다. 장마철을 지나 수확하다 보니 콩 벌레들이 들어붙어 수확량이 다소 적었다.

    

 참께는 콩을 수확한 후에 거두었다. 두 농사가 끝나면 트랙터를 불러 로터리 작업 후 시금치 씨를 뿌렸다. 수확한 콩과 참깨는 형제, 친척들과 나누어 먹었다. 경매장에 낼 정도의 양도 아니었고, 농사 지어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었을 뿐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서울에 살다 온 사람이 농사를 제법 잘 짓는다고 했다. 이 말이 동네에 사시는 큰어머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느 날 큰집에 볼일이 있어 찾아가니, 그 아래 밭도 경작해 보라며 선뜻 내놓았다. 예로부터 큰집에서 경작해 오던 밭이다. 지금은 일손이 없어 동네 사람이 마늘이랑 시금치를 경작하고 있었다. 300평이 조금 넘었다. 이때 거절하지 못한 게 뒷날 화근이 되었다. 과유불급이 된 셈이다.    


 다음 해부터 600평 가까운 밭에 검은콩, 참깨, 시금치는 물론 마늘까지 심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 주말에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말았다. 예상한 대로 잡초와의 전쟁에서 곤욕을 치려야 했다. 생업도 아닌데 내가 왜 이래? 중간에 타월을 던지려고 해 봤지만, 조소가 내 자존심을 건드릴 것 같았다.

 “그렇지! 농사는 무슨 농사여..”

 진퇴양난이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인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선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다.     


“유레카!”

 땅두릅이 뇌리를 스쳤다. 인근 처가에서는 논, 밭농사 이외에 땅두릅도 하고 있었다. 귀향 후 바쁠 때 일손을 돕기도 했다.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그 땅에 딴 농사는 지을 수 없다. 그런 단점이 오히려 내겐 적합했다.  

  

그해 콩, 참깨 수확을 마지막으로 갈아엎었다. 과감히!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방에 멈춘 재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