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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Apr 23. 2021

별난 사람들

 가을 땡볕은 따가웠다. 버드나무 그늘을 지날 때는 좀 나았지만 뒤 따라오는 아이들 때문에 마냥 멈출 수 없었다. 비포장도로 가운데로 모아진 두 줄기 자갈 무더기. 열기와 산란된 햇빛은 우리 얼굴을 오징어 굽듯 했다. 이십 리를 그렇게 걸어서 읍내에 도착하면 버스를 나눠 타고 목적지까지 갈 것이다.

 학교에서는 오 학년이 되면 가을에 금산과 인근 사찰 용문사를 답사하곤 했다. 수학여행과는 별개다. 요즘 같으면 성지순례와도 같은 학교 행사였다.    


 금산을 오르는데 한동안 산길은 완만했다. 중간 정도를 넘어서자마자 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진다. 뒤처지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쉬어가는 횟수도 잦았다.

    

 어느 단체 행사할 것 없이 일탈하는 문제아들은 꼭 있는 법이다. 몇몇 아이들은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샛길로 빠져 달아났다. 뒤늦게 안 선생님은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수풀 속을 헤집고 찾아 나선다. 토끼 낚아채 듯 끌려 나온 아이들. 무릎 꿇고 손 든 모습을 보며 우리는 또 오르기 시작했다. 산속의 가을 해는 토끼 꼬리보다 짧아 이내 어스름해졌다.    


 예약한 산장에 도착했다. 부근에는 기암괴석과 바위들이 유난히 많았다. 산장은 초등학생 170여 명을 수용하기에 외관상 부족해 보였다. 본채만 놔두고 민박용 별채와 아래쪽에 새로 지은 이층 건물을 통 채로 배정받았다. 아래 건물은 급한 경사면 위에 가까스로 축대를 쌓아 만든 석조 구조물이었다.

 각자 가져온 쌀을 모아 산장 측에 넘겨주고 우리들은 일층 방으로 들어갔다. 여학생들은 이층을 사용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자리가 조금 정리되는 듯했다. 부모님 곁을 처음 떠나 온 우리들은 깊은 산속의 밤이 무척 낯설었다. 창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풀벌레 울음소리만 낭랑할 뿐 인기척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렸다. 선생님인 줄 알고 떠드는 것을 멈추었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아줌마 세 사람이었다. 사십 대 정도로 보였다.

“잘 때가 없어서 들어왔으니 조금 좁더라도 같이 자자.”

한 녀석이 묻는다.

“아줌마들은 어디서 왔는데?”

“저기 바다 건너서 왔단다.”

우리들은 돌아앉아 그전처럼 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그곳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짓궂은 녀석들이 몰려간 모양이다.

“이제 좀 자자. 불 좀 꺼.”

“어? 안되는데..”

“왜?”

“남녀 칠세 부동석인데 불까지 끄고 나면..”

“이 아이들이 좀 별나네.”

“그러게 머리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러면 불 끄는 것은 좋은데.. 책임은 절대로 못 집니다.”

“뭐라고!”

“보자보자 하니,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네.”

 화를 내며 일어난 아줌마들.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들고 온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문전에 어지럽게 놓인 신발들을 밟고 나갔다.

 그런데 웬걸 다시 들어오더니 고무신 몇 켤레를 집어 어둠 속으로 냅다 던지는 게 아닌가. 시비를 걸던 아이들이 뒤따라 나왔지만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지형에 찾을 엄두를 못 냈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제발 내 것이 아니기 바랐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신발장으로 갔다.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신발을 신은 후 방에는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만 맴돌았다.

 아침 식사 후 산행을 위해 대열을 정리하는데, 신발을 못 찾은 아이들이 자기 반 반장, 선생님과 함께 찾아 나서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분들은 금산에 있는 보리암에 기도 차 왔다가 잠자리가 여의치 않자 이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맹랑한 우리 탓도 있다. 홧김이라지만 무고한 아이 신발에까지 분풀이한 보살님들.

 별난 기억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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