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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May 07. 2021

금산(上)

 남해 금산의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서해에 석모도 낙가산의 보문사가 있다면 동해로는 낙산사의 홍련암이 있고 그리고 남해에 금산의 보리암이 자리한다.  


 고려 말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조선 태조 기단(祈壇)은 금산 38경 중 하나(7경)에 불과하다.

 이번 답사에서는 15경 쌍홍문, 2경 문장암, 인근 어느 각자(刻字), 금산산장 그리고 보리암의 나비 음각화를 둘러볼 예정이다. 먼저 금산 15경 쌍홍문까지 가보자.   

  

 금산 들머리부터 산길은 완만한 오름길이다. 흙과 돌들이 적당히 섞여 있어 뒷마을에 가는 길처럼 낯설지 않다. 이십 분가량 올라 계곡물을 건너는데, 한여름이면 시원하기가 얼음물 같았던 기억들이 물소리처럼 재잘거린다.

 길옆에 쉼터가 보인다. 힘들면 쉬어가라는 관리공단의 섬세한 배려이다. 쉬어간다는 것은 이제부터 전개될 험로에 대비하여 힘을 비축하라는 의미도 곁들일 것이다.  

  

 계곡물을 건너자 곧바로 돌밭에 급경사길이 시작되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뒤돌아보니 상주해수욕장 앞바다가 떠오르는 시각적 착각 현상이 일어난다.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가파른 길을 쉬엄쉬엄 오르면서 ‘우보천리’라 하고 나잇살을 다독거렸다.  

   

 어느새 데크 계단 두 개가 연이어 설치되어 있는 구간에 다다랐다. 계단을 다 올라 옆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맑은 솔바람이 일어 거친 숨을 고르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이 산에 오른 이후 수없이 왔었다. 이십 대 초반 무렵인 것 같다. 친구들과 왔다가 상주해수욕장에서 올라오는 버스를 놓칠세라, 달음박질로 20분 만에 등산로 입구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 이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물 한 모금 후 일어섰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깔딱 고개와 끝자락에 쌍홍문이 여전히 위엄을 자랑할 것이다.  

    

【사진1 출처 : 素雲 Photo folder】    


 깔딱 고개에 들어서서 큰 바윗돌 사이로 걷는데 종아리에 납덩이를 매단 것 같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위쪽으로 금산의 관문 쌍홍문(雙虹門)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산로 들머리로부터 50여 분만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쌍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원효 스님이 명명했다는데 대단한 심미안의 소유자다. 속인의 눈에는 땅에 반쯤 파묻힌 해골이다. 한때 천양문(天兩門)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더 그럴싸하게 들린다.  


 해골의 오른쪽 눈 속으로 오르는 돌계단. 다 올라 뒤돌아볼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비길 데가 없다.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닷바람은 쌍홍문 골짜기로 모여들었다가 두 개의 눈구멍 속으로 빨려 든다. 유속이 빨라지는 구조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는 미조 앞바다. 조는 듯 한가로운 섬들, 에머럴드 바다 아스라이 하늘이 스며드는 수평선. 이러한 비경이 흘린 땀의 보상으로 품에 안긴다.

 이 자리에 올 때마다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조선 중중 때 학자이자 명필로 유명한 자암 김구 선생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이곳 남해에서 13년간을 유배 생활했다. 그때 남긴 경기체가 중 『화전별곡』이 있다.  

   

天地涯 地之頭 一點仙島

左望雲 右錦山..

偉 天南勝地 景 긔 엇더 하닝잇고..    


하늘의 끝이요 땅의 변두리인 아득히 먼 신선이 사는 섬에는

왼쪽은 망운산이요 오른쪽은 금산이라..

아! 하늘의 남쪽 경치 좋고 이름난 곳의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주) 망운산은 남해의 진산(鎭山)이고, 화전은 남해의 별칭이다.    


 기록에 의하면 683(신문왕 3)년 원효대사가 보리암 자리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자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불렀다 한다. 원효대사라 하면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 가던 중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에 이른 일화가 떠오른다. 쌍홍문도 해골 형상이니 우연치고는 묘하다.    


 3개의 등산로 중 이 길을 택하여 쌍홍문을 마주 보고 서면 달리 돌아갈 길이 없다. 골짜기 양옆으로 험준한 수직 절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암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문을 거쳐야 한다.

 뒤돌아보니 이 길은 인생행로와도 닮았다. 계곡물까지는 청년기, 쉬고 또 쉬던 때는 중년기, 기진맥진 상태로 쌍홍문(해골)에 다가오는 것이 인생의 후반기 같다. 쌍홍문은 내게 말을 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쌍홍문 우측 눈 아랫부분을 밟고 들어와 좌측 관자놀이로 빠져나가는데, 도중에 위를 쳐다보니 두정부 일부가 뚫려있다. 로마 판테온 천장의 창을 통해본 하늘도 이럴까? 선계 대라천(大羅天) 또는 불국정토 도솔천을 떠올려보게 한다.    

 

 봉수대가 있는 산 정상까지 가야 금산 제2경 문장암을 볼 수 있다. 지체할 수 없어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사진 2 출처 : 素雲 Photo f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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