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학교가 있던 부산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여수-부산 간 정기 여객선은 거제도 항을 마지막으로 부산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아침부터 온 비는 오후 들어서도 그칠 기미가 없다. 장대 같은 빗줄기, 세찬 바람에 풍랑마저 예사롭지 않다.
가덕도 앞바다를 지나며 나는 그날따라 불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바다에 여객선 한일호가 침몰한 것은 불과 2년 전 일이다. 90여 명이 익사한 끔찍한 비운의 현장. 당시 부산일보에 게재된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배 선두 좌현이 옆으로 드러눕고, 그 위로 바닷물이 얇게 썰려가고 있었다. 그날 신문 헤드라인에 이렇게 썼다.
‘아! 한일호..’
나는 제일 싼 삼등실 표를 샀지만, 배 밑바닥이고 헛간 같아서 좀처럼 제자리로 가지 않았다. 이층 갑판이나 일층 통로에서 주위 경관을 구경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비 오는 날에는 통로 옆 이등실에 들어가 얌체처럼 엉덩이를 붙이곤 했다.
“각자 자기 선실로 돌아가이소!”
빗물을 흠뻑 뒤집어쓴 깍두기 머리의 한 선원이 입구에서 소리쳤다. 분위기를 알아챈 사람들이 짐을 들고 여기저기 일어난다. 순진하게 나도 그들과 같이 따라나섰다. 삼등실로 가는데 배 요동이 심하여 좌충우돌하며 간신히 발을 내디뎠다.
먹장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은 줄기차게 비바람을 쏟아붓는다. 집채만한 파도가 이 배마저 삼킬 기세로 다가온다. 어깨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이 문 열면 죽습니다!”
선원의 말과 동시에 이등선실의 문들이 요란스럽게 잠기고 있었다.
삼등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다다랐다. 짭조름한 냄새가 역겹게 와 닿는다. 칙칙한 조명, 동그란 유리창만 좌우 벽면마다 서너 개 보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떠밀려 계단을 내려갔지만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뱃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아니 갇혀 죽기는 싫었다. 우리 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겨울밤이거나 풍랑이 심해 구조가 도저히 불능할 때, 선장이 선원을 불려 모은데”
“그래서, 무슨 회의라도 한데?”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선원들이 나가 선실의 문을 대못으로 박아.”
“미쳤어? 왜 그런데?”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이 없으면 유해라도 보존하기 위해서..”
“선장실에 다시 모여 서로를 결박한데”
배가 가덕도를 지나 낙동강 하구에 이르자 파고가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 까무러치듯 어린애들 울음소리. 선실 유리창을 보았다. 어른 키만큼 높이에 동그란 유리창들은 밀폐형이다. 배의 흘수선 가까이 있어 잿빛 하늘이 보이다가 곧 시퍼런 바닷물 깊이 잠긴다. 배 앞쪽이 하늘로 솟구치다 곤두박질치면 선내는 찢어지는 공포의 소리가 넘쳐났다. 아비규환이었다.
‘이러다간 배가 침몰하겠다!’
나는 구역질을 하다 말고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건장한 선원들이 버티고 있었다. 말이 선원이지 나에게는 큰 바위 덩어리와 다를 바 없었다. 어른들이 여러 명 합세하여 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알았다. 선원들의 힘이 그토록 무식한 것을.
“이 보게! 제발 밖으로 나가게만 해주게..”
“생사람 잡을 셈이야! 이놈들아!”
선원들은 꺼칠꺼칠하고 쉰 목소리로 맞고함을 지른다.
“밖으로 나가면 다 죽습니다! 오바이트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하이소!”
선원의 등 뒤로 한바탕 물 폭탄이 덮친다. 일부가 통로를 타고 계단 아래로 밀려들어온다. 나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꼬꾸라져 토했다.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한다. 배가 앞뒤 좌우로 기울 때마다 바닥에는 빈병, 걸레 막대기, 짐 보따리, 물통들이 이리저리 구르고 있다.
‘그래 저 물통이야.’
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빨리 이 고통이 지나가기를.. 양다리를 벌리고 뻗어 거머리처럼 바닥에 붙었다. 과부하로 굉음을 내는 엔진 진동이 다리를 타고 오른다. 다들 실신했는지 비명소리가 작아진 틈으로 ‘끼이~끽’ 뒤틀림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들바들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의식만 불티처럼 남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동이 조금 덜한 것 같다. 뒤를 돌아봤다. 기진맥진한 채 바닥에 나뒹구는 사람, 서로를 부둥켜안은 사람, 고개를 옆으로 젖힌 채 벽에 기댄 사람들.. 입구를 보니 선원들이 없었다. 이때다 생각하고 네 발로 기다시피 올라갔다.
아직도 가랑비가 내리고 파도가 일고 있었다. 온몸에는 식은땀과 토한 이물질 범벅이었다. 또 구역질이 나온다. 이제 토하여도 나오는 것은 노란 액이 전부다. 난간을 붙잡은 채 멀리 보니 정신이 좀 들었다. 부산 혈청소와 등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살았구나..’
부두에는 걱정되어 나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둘려 봐도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말없이 다가와 등을 내 보이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이 아닌 살가운 흙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