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3)

- 조선시대 무신과 문신을 만나다

by 소운

정상부의 목혜암에는 수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나는 그냥 지나쳤다. 다만, 목혜암 바로 뒤에 있는 바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예전에 본 석각(石刻)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려고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 한 장을 추가로 찍었다.

節度使 南德夏

軍官 盧億, 趙願泰, 全佑邦

己未 菊秋

縣令 成胤績

【사진 1 출처:素雲 Photo folder】


【사진 2 출처:素雲 Photo folder】


절도사 남덕하(1688~1742)는 조선 숙종, 영조 때 무신이다. 그는 의암 부근에 논개의 애국 충정을 기리는 <의기사> 사당을 세운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호위한 장교는 노억, 조원태, 전우방 세 명이며, 현령 성윤적이 영접을 맡았다고 한다. 이때가 1739년(영조 15) 9월이라 하니, 남덕하는 52세로, 지금 나이로 치면 적어도 60대 후반에 해당한다. 글씨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으며, 그 필체는 날카로운 칼날로 새긴 듯 비장감이 돋보였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영접을 맡은 현령이었다. 성윤적은 《남해 읍지》에 따르면 재임 기간이 고작 10개월(1739. 9.17~1740. 7.29)에 불과했다. 그해 9월, 절도사 일행을 맞이했으니, 사실상 그의 첫 번째 공식적인 임무였을 것이다.


지방 관리로서 관료들이 방문한다면 상당한 스트레스가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기회로 삼아 상전의 눈에 띄고 승진과 근무지 변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니었을까? 임진왜란 이후부터 순조까지 236년 동안 148명의 현령이 다녀갔고, 그들의 재임 기간은 평균 1년 7개월에 달했다. 그중 30%는 1년 미만의 재임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사실은 당시의 정치적 흐름과 인사이동을 엿볼 수 있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좀 더 산을 내려가다 보니, 길 오른편에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금산에서 자생한 줄사철나무 한 그루가 2019년 11월 식생조사에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나무는 줄기에 공기뿌리가 나 있어 물체에 붙어 자라는 독특한 품종이었다. 나는 그 나무가 붙어 있는 바위 왼쪽면의 글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진 3 출처:素雲 Photo folder】


【사진 4 출처:素雲 Photo folder】


方伯 權爀

幕下 白尙華, 尹宗衡

縣令 金佐國

察訪 金九澤

乙丑 初冬


방백(관찰사) 권혁(1694~1759)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조선 영조 때 문신으로, 후일 이조판서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안동 권 씨 권문세족으로 부친도 이판, 조부도 사헌부의 장령(掌令)을 각각 역임했다.

수행원 백상화와 윤종형을 대동하고, 현령 김좌국, 찰방 김구택이 함께 영접을 맡았다. 『신 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남해에는 금산, 설흘산 그리고 원산에 봉화대가 있었으며, 이 지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는 아마도 경상도 관할 지역인 남해를 순행하면서 금산의 봉화대 실태를 조사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 시점은 1745년 겨울 초입이었다. 당시 권혁은 52세로, 절도사 남덕하보다 6년 뒤에 이곳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금산에서 동갑내기였다는 사실이 묘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덕하 때는 등정 연도 뒤에 현령 이름이 있지만, 권혁의 경우 현령과 찰방 뒤에 연도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령이 공식적인 수행원으로 포함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추측해 봤다.

현령 김좌국은 청주 출신인데, 그가 재임한 기간은 2년(1744. 9.27~1746. 9. 6)으로 비교적 긴 편에 속했다.


줄사철나무의 수령은 보통 20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관찰사 일행이 금산을 찾은 시기는 280년 전이었다. 그 말은, 이 나무가 자리 잡은 시점이 훨씬 뒤라는 의미가 된다.

나무는 관찰사 함자인 만큼 선을 넘지 않아 법도를 지켰고, 석각 또한 도도한 기품이 서려 있어 나는 찬탄을 자아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새겨진 26자와 함께, 나무는 바위에 기대어 묵묵히 오랜 세월을 견뎌냈다. 수더분한 바위는 이들을 보듬고 풍우상설 견뎌내며 천년으로 나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 따라 표표히 떠났지만, 그들의 땀과 숨결의 일부는 석벽 속에 갇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캐내어, 그 시대정신에 공감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했던 선인들의 생애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온고지신의 실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금산에 올 때마다, 나는 새로운 이유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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