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사바위에 내리는 별
선생님은 반 학생들을 상사바위 중앙으로 불러 모았다. 그 사이, 맹랑한 학생 두세 명이 대열을 벗어나 낭떠러지 가까이 기어가고 있었다. 맨 앞에 나서던 학생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야~ 보인다, 보여!”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뒤늦게 이 상황을 알아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게 서서, 상냥한 목소리와 손짓으로 그 학생을 불렀다.
“야~, 흰옷 입은 애!”
“아니, 돌아보는 너 말고 그 앞에.”
“그래, 너!”
호랑이 같던 선생님이 부드럽게 웃어가며 그 학생을 불렀다. 멀리 떨어져 있던 그 학생은 반신반의하며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학생을 단호하게 꾸짖으며 벌을 내렸다.
“저기 가서 두 손 들고 꿇어앉아!”
아버지께서는 금산 상사바위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 친구를 회상하셨다. 그만큼 상사바위는 어린 학생들에게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바위 끝이 모서리가 아닌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한 번 미끄러지면 멈추기 어려운 곳이었다.
【사진 1 출처: 소운 Photo folder】
나는 상사바위 정상에 쇠말뚝 펜스로 둘러싸인 모습을 본 이후로 그곳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글감도 찾고 흐릿했던 기억들을 되새기기 위해 다시 그곳을 답사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날은 관광객이 드물어 한산했다. 상사바위 정상 부분이 쇠말뚝 대신 나무 데크로 조성돼 있어 놀랐다. 나는 그 위를 뚜벅뚜벅 걸으니, 경쾌한 울림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뛰어난 절경이 툭 트인 시야에 펼쳐졌다. 이런 쾌감이 또 있을까!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사색에 잠긴 채 데크 위를 걸었다. 어느새 하늘 위를 산책하고 있었다.
【사진 2 출처: 소운 Photo folder】
선경에서 다시 내려다보는 속세는 진초록으로 단장되어 매우 고혹적이었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바다 끝자락, 창공은 하얗게 숨을 내쉬며 거침없이 살아나고 있었다. 옛 문인들이 어찌 시 한 수 읊조리지 않았겠는가.
저 멀리 남쪽의 명승지, 소금강이라 하는데.
구정봉과 쌍홍문은 그윽하고 멀어 가물거리는구나.
일찍이 남해는 신선들의 소굴이었으니,
광활한 창공에 채색 구름 멀리 뻗쳤구나.
이 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의현(1669-1745)의 문집『도곡집』에 수록된 칠언절구로, 그는 영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유학자들이 남긴 금산 기행 문집에서 위 시처럼 쌍홍문과 구정봉은 빠지지 않는다. 나는 구정봉을 언제부터 상사바위라 불렀는지 궁금해 안내판을 찾았다. 설명에 따르면, 조선 선조 때 봉강 조겸의 기록(1569년)에 따라 사신암(捨身巖) 또는 상사암(相思巖)등으로 명명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록에 대한 출전을 더 밝혀놓지 않아,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 뒤, 내가 찾아본 문헌 중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목의 『범해록』이 있었다. 그는 1638년 9월에 금산을 등정하며 이렇게 적었다.
“.. 남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가 가장 기이한데 사신암 또는 구정봉이라고 했다. 위에는 아홉 개의 우물이 있고 짐승이나 새의 발자국조차 없었다.”
41년 후, 문신 남구만의 아들 남학명이 『회은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 구정봉에 올라 보니 아래가 만 길이다. 푸른 바다와 마주 보고 있는데 불안하고 두려워서 몸을 더 숙일 수 없다. 돌 구덩이가 마치 가마솥과 같은 데 모두 아홉 개나 있었다. 각기 물을 담고 있어, 이 또한 유별나고 이상하다.”
그 외 문헌들 - 『명암집』, 『능호집』, 『묵헌집』, 『석당유고』 - 에서는 한결같이 구정봉(九井峰)으로 단독 표기되어 있었다. 사신(捨身)은 원래 불교 용어로, 그 어감이 좋지 않아서 유학자들이 꺼렸던 것 같다. 그래서 조선 후기로 오면서 구정봉으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여기에 남녀 간의 애틋한 서사를 입히고 윤색하여, 오늘날 상사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았다.
유학자들은 구정봉의 엄청난 스케일에 경외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다 한가운데 이처럼 험준한 바위가 있을 줄 알았겠는가. 십만 척에 달하는 바위 덩어리(정식『명암집』) 위에서 조망되는 푸른 바다에 찬탄이 끊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물웅덩이에는 별이 하나둘 영롱하게 내려앉았다.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사람들이 경건하게 제를 올리며, 저마다의 사연을 속삭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진 3 출처: 소운 Photo fo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