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명승지
상사바위 뒤로 내려와 오솔길을 걷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나는 오른쪽, 좌선대 방향으로 향했다.
좌선대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에 있지만, 나는 십여 미터 전에 있는 샛길로 들었다. 좌선대를 중심으로 길이 양 갈래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져 금산 산장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이다. 내가 샛길을 택한 이유는 옛사람들이 걸었던 정다운 길이기도 하지만, 운치와 눈요기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샛길을 얼마 안 걸어 기이하게 생긴 바위(기암)가 나타났다. 보리암 뒤편으로 장군봉이 버티고, 그 앞에 형리암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기암이 그 바위를 흉내 내다, 옆 바위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나는 이 기암을 볼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왼쪽에는 바위가 금산 20경 좌선대가, 오른쪽에는 21경 삼사기단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좌선대와 삼사기단은 사진으로는 일부분만 보인다. 이 아치문을 통과해야 원래 길과 만나 금산 산장으로 갈 수 있다.
【사진 1 출처:素雲 Photo folder】
조선 후기 유학자 남학명과 정식도 각자 문집을 통해 이 기암을 언급했다. 남학명은 이를 자세히 묘사한 후, ‘저절로 만들어진 돌문 같다.’라고 했고, 46년 뒤 온 정식도 ‘흡사 사람이 만든 것 같은데,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식은 문집에 ‘이 산에는 보리암, 의상각, 도솔암 세 곳이 있다.’고 기록했다. 지금의 위치에서 왼쪽 지역, 즉 좌선대의 석벽을 등지고 남향으로 과거 도솔암이 있었다. 그날도 무성한 잡초를 헤치며 보니 일부 석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금산에는 보리암만 남아있다.
좌선대와 삼사기단 사이에 있는 기암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금산 산장의 야외 테이블이 보였다. 요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임을 증명하듯, 젊은이들이 컵라면을 먹으며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사진 2 출처:素雲 Photo folder】
나는 그 뒷자리에 앉자마자 펼쳐진 스펙터클한 풍광이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예전, 산장의 할머니가 직접 담근 걸쭉한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곁들인 상차림을 잊을 수 없었다. 간혹 해무가 발아래 골짜기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샤워하듯 식히는데, 그때마다 선인의 반열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300여 년 전, 이 자리에서 풍광을 조망하던 유학자 정식은 어떻게 느꼈을까? 그는 솟구치는 시심을 글로 단숨에 써 내려갔다.
‘대개 산꼭대기들은 그 형세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고,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네. 훤하게 넓게 트여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바다와 하늘색이 구분 없느니.. 가히 천하에 제일 뛰어난 자리라 이를 만하지.
정식은 이 글을 쓰기 전, 주변의 명승을 두루 살폈다. 왼쪽으로부터 귀석(흔들바위), 범봉( 촉대봉), 향로봉, 도솔암의 순으로 각각의 특징과 위치를 세세히 묘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테이블 놓인 이 자리야말로 최고의 뷰 포인터일 것이다.
또한 유학자 남학명은 상사바위를 구경한 후 『회은집』에 의미 있는 글을 남겼다. ‘도솔암 석문을 지나 신당으로 돌아왔다.’라고 했다. 기암을 지나면 신당이 있다고 했고, 몇몇 문집에서도 ‘성조 신사’니 ‘산신당’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 금산 산장 인근과 상사바위의 아홉 개 물웅덩이와의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여전히 묘한 여운이 남았다.
금산 산장의 야외 테이블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바위 더미가 바로 좌선대다. 조심스럽게 오르면 한 사람이 넉넉히 앉을 정도로 움푹 파인 자리가 나온다. 산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나는 젊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올라가 가부좌 틀고 합장해 보기를 추천한다.
언젠가 이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좌선대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에 여성이 간신히 올라앉았다. 오호!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강단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 조금 후, 돌고래 샤우팅이 터져 돌아보니, 여성분이 엉거주춤 일어나 쩔쩔매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린 채 뒤로 돌아서 올라온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관광객들의 좌선대 사용 설명서 미 숙지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사진 3 출처:素雲 Photo folder】
금산 산장에 있는 세 채 중 가장 앞에 있는 이층 건물은 지은 지 60년이 넘었다. 과거 남녀 학생들이 하룻밤을 묵던 곳으로, 200여 명이 함께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의 발냄새 맡으며 금산과의 첫 인연이 시작되었던 그곳, 지금 이렇게 보니 새삼스럽고 감회가 깊다.
다음 날 새벽, 상사바위에서 일출을 보고 토끼처럼 뛰어 되돌아오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날의 친구들은 인연 따라 뿔뿔이 흩어졌고, 덩그러니 남은 빈자리만 바라다보며 가슴이 헛헛했다.
이제 마지막, 보리암으로 향할 차례다. 나비를 찾아 나서는 여정만을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