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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n 21. 2021

효(孝)의 그림자

 작은아버지는 평생을 공직에 몸담고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셨다. 퇴임을 앞둔 어느 날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자녀들로부터 효를 받더라도 어떻게 하면 품위 있게 수용할 수 있는가. 이 난제에 대하여 해법을 찾아 나서는 어느 친목단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효를 구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찾아오면 반갑고 안 와도 괜찮은, 즉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인이 된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    


 같은 공직에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아오던 한 친목단체가 있었다. 수년 동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다 보니 어느 집에 키우는 강아지, 고양이의 이름이며 심지어 품종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정년퇴임이 다가오면서 회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퇴직금 수령에 대한 문제였다. 일시불로 다 받느냐, 아니면 일부는 일시불로 잔여분은 연금으로 돌릴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두 다 연금으로 할 것인가?    

 이 현안에 대해 주변의 사례들을 광폭으로 탐색해가며 회원들은 심도 있게 토론했다. 전액 일시불로 받으면 자칫 자식들에게 빼앗길 것 같아 불안하고, 연금 반 일시불 반으로 하자니 푼돈 같아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전액 연금으로 돌리면 노후생활에는 별걱정이 없으나 자식들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이듬해부터 선임자가 정년퇴임을 시작하더니 몇 년 사이에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 앉았다. 그런 뒤에도 정기적 모임은 변함이 없었다. 하나같이 자녀들의 용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에게 목돈을 선뜻 내놓는 일도 없었다.

 어느 집 자녀가 부모에게 퇴직금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으나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는 풍문도 돌았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평소 지병이 있던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친목회원 전원이 문상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서 거금 일억 원을 내놓았다.


 상을 다 치른 어느 날 친목회장은 상주를 불러냈다. 자리를 같이하면서 그간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전 회원들의 퇴직금 중에서 일억 오천만 원을 현금으로 갹출하여 공동 기금으로 묶어두었지. 여기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으로 회원들 모임, 여행, 경조사 비용 등으로 충당하고 있었다네.”

“전혀 들은 사실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끝까지 들어보게. 먼저 우리 곁을 떠나는 자에게 본인의 장제비와 유족 위로금 명목으로 일억 원을 지불하기로 약정돼있네. 유명을 달리한 것은 안타깝지만 자네 부친과 남아 있는 우리들과의 거래는 이제 끝났네."    


의아해하는 상주는 되물었다.

"나중에 모든 회원이 별세하게 되면, 저희 선친의 잔여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친목회 회장은 담담하게 답변을 했다.

"먼저 가는 이에게 문상을 가서 곡(哭)도 해주고, 유족처럼 문상객 안내까지 나서서 하지 않던가. 어디 그것뿐인가. 전원이 장지까지 따라가 하관 하는 그 순간까지 망자와 같이 한다네. 그래야 먼저 가는 친구가 우리를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지.”

"그래서요?"

"그렇게 일을 하다가 보면, 맨 마지막에 남은 자가 있지 않겠는가. 어느 누구보다도 노구에 다리품을 파는 등 고생이 많을 것이야.”

“그야 그렇겠죠.”

“우리들의 기금 잔액은 마지막까지 남아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친구에게 몰아주기로 했다네."

친목회장은 말을 마치며 공증을 받은 서류를 내 보여줬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 회원들의 옷차림부터 달라졌고, 얼굴은 환하다 못해 귀티까지 흘렸다. 어디 그뿐이랴. 어느 집 며느리는 아침마다 보약을 다려서 올리고, 어느 집 아들은  개인 종합검진 티켓과 고가의 헬스장비까지 보내왔다.

 이들이 모였다 하면 시끌벅적하고 박장대소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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