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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16. 2021

장터 사람들

말뚝쇠

해가 지려면 얼추 한 뼘이나 남았건만

논물 빠지듯이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모양이다.     


옷가게 박 씨도 달구지 짐을 슬슬 꾸리는데

신발가게 희수 애비는 앉은 먼지만 청승스레 털고 앉았다.

좀 더 기다려 볼 셈이다.

바로 건너 그릇가게 아지매는 어젯밤 무얼 했는지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고만 있다.     


휘익 회오리바람이 불어온다.

지푸라기, 뻥튀기 부스러기들이 시장바닥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한산한 가게들 사이로 비틀, 비틀거리며 오는 이가 있다.   

한쪽 바짓가랑이는 돌돌 말아 올렸고, 윗도리는 낡아 해진 군복 차림이다.

밤송이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가무잡잡한 얼굴을 주르르 타고 내려

허연 막걸리 자국이 남아있는 앞자락에 뚝뚝 떨어진다.   

  

풀어진 토끼 눈으로 그릇가게를 힐끗 쳐다본다.

고무신 한 짝을 슬그머니 벗더니

아지매가 깔고 앉은 초석 위에 냅다 내리친다.

벌떡 깨어나 허둥거리다 말뚝쇠를 이내 알아본다.

“이 문둥이가 뒈지려고 환장했나!”

파리채라도 집어 들고일어나려는데 항아리만 한 엉덩이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 따라 나온 꼬마가 뭘 사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말뚝쇠가 얼굴을 실룩거리며 다가오자, 기겁하며 치맛자락으로 파고든다.

엄마는 꼬마를 숨긴 채 쫓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이고 저러다가 애기 잡겠네!”

“내가 저 놈을..”

주위 사람들이 나서려고 하자 날렵하게 내달리며 키득거린다.     


석탑을 등지고 있던 어물전도 말뚝쇠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쪼그려 앉아 생선 고르는데 정신이 팔린 아낙네들.

어깨를 툭 떠밀어 난장판 만들기 일쑤였다.     


동네 어른들은 말뚝쇠를 천덕꾸러기 취급하여 말을 섞지 않았지만

아줌마, 아이들은 자주 놀림을 당했다.

깜짝 놀라게 하여 제대로 먹혀들면 박장대소에 광대 승천하던 괴짜.

술이 입에 들어갔다 하면 더 심했지만

하회탈, 말뚝이, 마당쇠, 요괴 등 천의 얼굴을 가졌던 말뚝쇠.

족히 마흔은 넘어 보이던 그는 고개 너머 혼자 산다고 했다.   

    

말뚝쇠가 한바탕 소동으로 주위를 평정하고 나면

이내 파장으로 이어져

장터는 돌아오는 오일장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장날 어물전은 아낙네들 수다로 늘 시끌벅적하다.

“요즘 시장에 말뚝쇠가 통 안 보이네?”

“아이고 참! 소식 못 들었나?”

“소식이라니?”

“말뚝쇠가 색시를 어디서 주어 와, 애기까지 갖게 했는데..”

“진짜?”

“색시 먹이려고 홍시인지 뭔지 따러 나무에 올랐다가 그만 떨어졌데.”

“어떻게 해..”

“그 자리에서 그만 덮어 버렸다고 했지 아마.”

“아이고.. 불쌍도 하지!”

이후 말뚝쇠나

집 나간 미친 여자를 간혹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익살과 카타르시스가 그리운 시장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머언 곳에서

가슴에 품었던 식솔을 거느리고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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