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쇠
해가 지려면 얼추 한 뼘이나 남았지만, 논물 빠지듯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갔다.
옷 가게 박 씨는 달구지 짐을 슬슬 꾸리고, 신발가게 희수 아비는 앉은 먼지만 청승스레 털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 볼 셈이었다. 바로 건너편 그릇 가게 아줌마는 어젯밤 무엇을 했는지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
휘익, 회오리바람이 불어왔다. 지푸라기와 뻥튀기 부스러기들이 시장바닥을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한산한 가게들 사이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한쪽 바짓가랑이는 돌돌 말아 올렸고, 윗도리는 낡고 닳은 군복 차림이었다. 밤송이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가무잡잡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허연 막걸리 자국이 남은 앞자락에 뚝뚝 떨어졌다.
풀어진 토끼 눈으로 그릇 가게를 힐끗 쳐다보더니, 고무신 한 짝을 벗어 아줌마가 깔고 앉은 초석 위에 냅다 내리쳤다. 깜짝 놀라 허둥거리다 말뚝쇠를 알아보며,
“이 문둥이가 뒈지려고 환장했나!”
파리채라도 집어 들려했지만, 항아리만 한 엉덩이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를 따라 나온 꼬마가 뭘 사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말뚝쇠가 얼굴을 실룩거리며 다가오자, 꼬마는 기겁하며 치맛자락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꼬마를 숨긴 채 쫓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고, 저러다가 아기 잡겠네!”
“내가 저놈을.”
주위 사람들이 나서려고 하자, 날렵하게 내달리며 키득거렸다.
석탑 앞 어물전도 말뚝쇠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쪼그려 앉아 생선을 고르느라 정신이 팔린 아낙네들, 어깨를 툭 떠밀어 난장판을 만들기 일쑤였다.
동네 어른들은 말뚝쇠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며 말을 섞지 않았지만, 아줌마와 아이들은 자주 놀림을 당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제대로 먹혀들면, 박장대소에 광대승천하던 괴짜. 술에 취하면 더욱 심해지는 그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미워만 할 수 없었다.
하회탈, 말뚝이, 마당쇠 등 천의 얼굴을 가졌던 말뚝쇠는 족히 마흔은 넘어 보였다. 그는 고개 너머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말뚝쇠가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나면, 장터는 파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오일장이 열릴 때까지 장터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장날 어물전은 아낙네들 수다로 늘 시끌벅적했다.
“요즘 시장에 말뚝쇠가 통 안 보이네?”
“아이고 참! 소식 못 들었나?”
“소식이라니?”
“말뚝쇠가 색시를 어디서 주어와, 아기까지 가졌대.”
“정말로?”
“색시 먹이려고 홍시인지 뭔지 따러 나무에 올랐다가 그만 떨어졌어.”
“어떻게 해..”
“그 자리에서 그만 덮어 버렸다고 했지, 아마.”
“아이고, 불쌍도 하지!”
이후로 말뚝쇠나 집 나간 미친 여자를 간혹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익살과 카타르시스가 그리웠던 시장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는 먼 곳에서 가슴에 품은 식솔을 거느리고,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