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Dec 25. 2021

아이들 이야기

 우리 옆집은 신혼부부가 사는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하던 일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 소리도 간간이 들려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전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모 중앙지에 기고했던 칼럼 중 어느 한 부분이 생각난다.

 내용인 즉 아이들은 부모 은혜를 대여섯 살 때까지 다 갚는다고 본다. 옹알이를 하거나 걸음마를 떼고 심지어 말귀까지 알아챌 때 얼마나 감격하고 가슴이 벅찼던가. 아무리 일상에 치이고 힘겨워도 아이들을 보면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던가. 그러니 아이들로부터 더는 효()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하였다.

     

옆집 부부도 슬하에서 벌리는 효 향연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을까.

     

 서재에는 유소년기에 재잘거렸던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화석처럼 남아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아이들 이야기라는 하나의 폴더로 묶었다.

     

 큰애가 아들이고 세 살 아래 딸이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에 걸쳐 쓴 손 편지, 축하 카드 그리고 아들 반성문들이 폴더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기적으로는 IMF 환란 전후다.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해 도산한 후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그 상황 속에 나는 직무 연수를 받고 있었다. 수료한 뒤 우리 가정에도 격변과 혼돈이 밀물처럼 쳐들어 왔다.

      

 여기 소개한 글은 아이들이 쓴 것 중에 발췌한 주요 단락들이다. 아내에게 쓴 것도 있으나 편의상 생략한다.

      

 아들】    

6-‘97. 5월에 책 선물합니다. 천천히 보세요. 김정현 소설 아버지

1-아버지 힘드시죠? 사회 정리, 영어 단어장 언제 검사해도 잘하겠습니다. 연수 잘 다녀오세요.

1-컴퓨터 사 주세요. 그것만 붙잡고 있지 않을 거고요. 연수 끝나는 날 별로 남지 않았네요. 아무 일 없도록 잘 다녀오세요.

2-결혼 OO주년이면 짧은 세월도 아닐 텐데.. 싫증(?) 날 때 없었겠죠(?). 술은 되도록 피하시고 담배는 하지 마세요.

2-제 생일에는 거의 무관심이던 아버지가 본인 생일에는 약간(?) 챙기시는군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받아 들고 저녁 늦게까지 완독 했다. 평정심을 허수아비처럼 앞세우고 미어지는 가슴 숨겨가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겼다. 그래서 마지막 겉장을 덮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담당 업무와 관련하여 <dBASE 3> 서적을 구입하여 독학하고 있었다. 당시 회사 컴퓨터는 IBM5555 시리즈 전산 입력용(단말기)뿐이었다.  

 

 뒷날 pc 대중화 바람이 불 때, 집에서도 pc<dBASE 3> 프로그래밍을 해볼 생각이 있었고 초등생인 아들마저 사달라고 졸랐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 처음 발을 내디딘 녀석이 아프로만386pc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아들이 ‘보글보글’ 게임을 하고, 딸은 의자 등받이를 짚고 올라 덩달아 좋아하던 기억이 선연하다. 순차적으로 486DX, 586 펜티엄까지 구입함으로써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pc와 친숙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던 것이 소소한 보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빠 힘든 것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술, 담배는 자제하라고 아들이 맹랑하게 나무란다. 담배는 그로부터 3년 뒤 끊었다.     

          

               

】    

2-제가 욕심꾸러기죠.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을 많이 사려고 하니까요.

3-이 편지가 3번째 편지예요. 지난 방학 때, 생신 카드, 어버이날 편지죠. 이제 편지가 쌓이고 쌓이게 되면 그땐 아버지 머리에 흰머리가 많고 할아버지로 변할 거예요. 이 편지가 아버지에게 가면 그날은 어버이날이 되고, 즐거운 우리 집으로 변하겠죠.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로 출퇴근하던 그저 평범한 아빠로 생각하던 때인 것 같다. 단색 종이에 바람이 스쳐가듯 써 내려간 아들 서체에 비한다면 딸은 완연히 달랐다. 또박또박하면서도 귀여움이 물씬거리는, 절로 세로토닌이 샘 쏟는다.

 

4-선물은 좀 작지만 딸의 따뜻한 마음으로 마련했어요. IMF시대에 모두 힘을 합쳐 옛날 마냥 즐거웠던 그때로 돌아가요.

4-제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수첩에 적어드리면 거기(연수원) 가서 보시고 아버지도 그렇게 써세요.

4-조그만 선물이랑 액자에 우리 가족사진을 넣어 거기서 보시라고 준비했어요. 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좀 섭섭하네)

     

 재직기간 중 해외출장도 있었고, 전산화 업무로 한 달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년기 때였다.

 관리자 직무교육을 경기도 연수원에서 진행하였다. 거의 두 달간 토요일 오후마다 집에 돌아오고 일요일 오후면 복귀했다. 연수원으로 떠나던 첫날, 현관에서 가족들이 배웅하는데 딸이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품에 안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반성문들인데 아직도 거칠고 흥분된 숨결이 묻어난다. 대개 A4 한 장 앞뒤로 적혀있었다. 따끔하게 혼 내키고 반성문을 쓰게 한 것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어선 경우다.

 하나는 여동생과 시비가 붙어 다투다가 싸울 때다. 또 하나는 학교나 학원에서 일과를 마친 후 친구와 놀다 늦게 귀가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책장을 벗어나 바람 쐬었으니 오늘 밤 잠자리 머리맡에서 저희들끼리 재잘거리고 뛰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터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