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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17. 2021

암자에 뜨는 별

 고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산에서 남해 금산 보리암을 찾아오는 길에 만나자는 것이다.

 그날 저녁 읍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남쪽 지방이라 해물이 신선하여 탕으로 시켰다. 시골에 적응하기가 어떤가, 그때가 그립다는 등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보리암은 유명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셔틀버스가 산중 주차장까지 오간다. 도착해 보니 막차가 떠나버렸다고 헤어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리 없이 내 승용차로 같이 가기로 했다.   

  

 8부 능선 주차장까지는 노폭이 좁고 경사가 급하다. 밤 9시경 한적한 산길을 올랐다. 주차시킨 후 매표소 입구에서 걷기 시작했다. 암자까지는 비포장도로로 20여 분 거리지만, 그믐 무렵이라 어두웠다. 다행히 길가에 막대형 가로등이 띄엄띄엄 켜져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거의 오르니 더는 가로등이 없고 문 닫은 기념품 가게만 나왔다. 멀리 수평선 위에 상선들의 불빛이 가물거렸다. 곧장 아랫길로 내려가면 암자다. 가쁜 숨도 돌릴 겸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게 무슨 일인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나타났다. 별(別)천지가 아니라 별(星) 천지의 숨 막히는 향연. 온 하늘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산길을 걸을 때 무던한 밤하늘이, 멈춰보니 이런 진풍경으로 드러날 줄이야. 광해(光害)도 피해 간 무결점이었다.

 촘촘한 별마다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땅바닥을 발로 서너 번 구르면 머리 위로 우두둑 쏟아져 내릴 모양새다.   


별들이 말하는 것 같다.

“너는 예전에 호기심 많고, 개울물처럼 마음이 여렸던 그 꼬마가 아니더냐?”

어른 코스프레하는 것으로 보였던지 갸웃거리깜박인다.  

“너를 속이지 마! 너는 아직 시들지 않았어, 우리들처럼..”     


 늘 함께 함에도 잊어버리는데 익숙하다. 스펙터클한 별 천지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면 지난 삶이 어땠을까. 부딪치고 깨져도 금방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외롭고 서러워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마음 다잡았을 것이다.

 

 별들을 쳐다보니 그리움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외가 대나무 평상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던 어린 시절. 은하수는 계속 새로운 별들을 만들어 냈다. 숨을 꾸욱 멈추어야 셀 수 있었다.

 대나무밭에서 ‘싸아 싸르르’ 키질을 하면 파르르 떨던 여린 별들. 탁탁거리며 모깃불 타는 소리. 게으른 부채질 소리. 외할아버지 내외의 두런두런 목소리가 별들 뒤로 메아리 져 사라진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 가던 길을 재촉한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모습을 불교에서는 화엄세계라 했다. 믿음이 서는 자는 내려오라 아래로 계단길이 보였다. 왼쪽으로 휘어져 끝자락을 교묘히 감추는 구조다. 경사가 급하니 삿된 마음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마당에 이르기 전 수곽(水廓)에서 물 한 모금 들이켜 본다. 물이 내려가듯 분별심까지 내려놓으라는 속 깊은 배려인가?     

 대개 암자는 규모가 작은 말사(末寺)이다.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 같은 문은 없지만 우리는 이미 문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요사채에서 잠깐 눈을 붙이다가 새벽 한 시에 법당으로 들어갔다. 보살, 처사하여 세 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음을 비워 고요한 경지에서 숨이 드나드는 것만 지켜보기로 했다. 묵직하면서도 진중한 기운이 주위를 에워싼다. 명성이 있는 기도처라 하지 않든가. 도량석이 울린 직후 방해가 되지 않게 혼자 가부좌를 풀고 물러났다.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새벽이지만 여기저기 별들이 빛을 접어들이고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좀 더 있겠다는 지인과 암자에서 헤어졌다. 산길을 내려오며 뒤돌아보니 빈 창공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가슴속 한마당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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