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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24. 2021

꽃구경(下)

 오월이 되면 서울에 계시는 숙부님이 고향을 다녀가시곤 했다. 아버님과는 다섯 살 터울이다.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아버님과 여러 말씀을 나누었다. 비워있는 작은방에서 주무셨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아버님이 2층 베란다 난간을 넘어 옆집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슬레이트 위에 양철로 덮어 씌운 지붕인데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 급히 마당으로 내려가 위태로운 상황을 지켜봤다.

 밤에는 무단 외출을 못하게 대문 자물쇠를 채워뒀다. 여의찮으니 옆집을 이용한 것이다. 조금 후 대문 옆 담장을 붙잡고 내려 유유히 거리로 나가신다.

 자정 무렵이었다. 제지하려고 하면 여전히 완력을 행사하는 분이다.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눈치 채지 않게 뒤를 밟았다. 다음날 아침 숙부님은 서울로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을 생각해 봐라.”    


 어머님이 대학병원에서 폐렴 치료 중이던 여름, 아버님을 주간 보호센터에 모셔보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 무단 배회 욕구가 줄어들 것으로 여겼다. 차로 10여 분 거리이며 사찰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믿고 맡겼다.

 창문을 넘어 이탈하는 소동이 한차례 있었으나, 아침에 방문 차량이 오면 탑승을 거부하지 않았다. 가을까지 석 달을 그렇게 모셨는데 그곳의 내부 문제로 인하여 더 이상은 맡길 수 없었다.    

 

 어머님은 보름간 치료를 하면서 폐렴은 극복했지만 연하 작용이 원활하지 못해 코 위관(L-tube)이라는 보조 장치를 부착해야만 했다. 퇴원 후 곧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노인 병원을 거쳐 요양원에 입소했다. 요양원은 읍내에 있어 도보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이웃들은 같이 요양원으로 모시라고 하지만, 말이 쉬워 그렇지 결단하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집에서 케어하기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졌다.

 수일 뒤 어머님이 입소한 요양원을 알아보니 대기자가 많았다. 차선책으로 이 섬 지역을 벗어나자마자 산자락에 자리한 요양시설에 당분간 있어보기로 했다.     


아버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강냉이 뻥튀기 샀다.

“아버지 저희 차로 드라이브나 하죠.”

 초겨울이었다. 아버님은 흔쾌히 따랐다. 다시 이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와 함께 육지로 나섰다. 마주 보이는 산자락 가파른 길을 오르자 부대시설들이 보였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류에 기재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직원이 자리를 권한다. 간호사가 나와 세세한 사항까지 설명했다. 아버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직원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내게 다가왔다.

“가자, 여기 사람들이 좀 이상하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버님은 자리에 앉지 않고 뻥튀기를 드시며 주위를 서성거린다. 서류수속이 다 끝나고 지층으로 같이 내려갔다. 방을 안내하고 아버님의 점퍼와 옷가지를 벗도록 해서 사물함에 넣는다.  

   

 한 요양사가 급히 다가와 뒤돌아보지 말고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라 한다. 아버님 시선을 피하며 시키는 대로 따랐다.

“당분간 적응이 필요하니 최소 7일 이내는 방문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발은 가져가세요.”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데 갑자기 귀가 멍해졌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자 고향 산자락이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내 몸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고통스럽게 뒤틀리며 쥐어짠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며 쉰 울음이 연이어 터졌다.


‘이런 불효가 있는가! 어찌 내손으로 아버님을..’    


 멀어져 가는 우리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님 눈빛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그날 드린 뻥튀기와 드라이브는 돌이킬 수 없는 위선의 비수로 가슴 깊이 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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