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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Feb 07. 2022

벌초

 설맞이 벌초를 다 마치고 아버님 봉분 옆에 앉아봅니다. 좌향(坐向)은 툭 터인 개방감으로 인하여 가히 일품입니다.

     

 왼쪽 산골마을의 물과 아랫마을 오른쪽을 감싸고 흐르는 물이 산자락 아래서 만나고, 건너 마을에서 내려오는 물까지 합류하여 남해바다 먼 길 떠납니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채 교장선생님이 아버님에게 삼은(三隱)이라 호를 지어준 근원이 아니겠습니까.   

  

 산세 또한 어떻습니까. 왼편 대국산이 긴 능선으로 흘러내리고, 가운데 성산은 다소곳이 몸을 낮추더니, 오른편 망운산이 우뚝 솟구쳐 1(), 성산 너머 호구산(虎邱山)2진이요, 보리암 금산이 아스라이 3진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학교장 퇴임 문집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태어나서 보니 국권이 찬탈된 일제강점기였고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조국 광복 그리고 6.25 한국전쟁까지 역사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걸어왔노라고. 한글도 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배울 수 있었다 했습니다.

 복무쌍지 화불단행이라 하듯이 나쁜 일은 겹쳐온다 하잖습니까. 아버님 세대 시련과 역경 극복의 덕분으로 저희들은 볕살을 쐬며 화초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갖은 풍설 견뎌내며 체화된 아버님의 근면함과 의지력을 어찌 쉬 잊겠습니까. 사소한 집안 물건이라도 고쳐서 쓰고 연금을 아껴 적금 든 통장이 몇 개였으며, 한 번 작정한 일은 시작과 끝이 한결같았죠.

그 모습들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과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이 대세입니다. 아버님은 달랐죠. 저와 아버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불가근불가원이 존재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님을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버지가 네 이야기를 종종 하신다.”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한학을 하시는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셨으니 응당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과의 이런 긴장은 성장할수록 익숙해졌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시기에 와서야 순기능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만큼은 그 선 거두시고 살갑게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명절날 밤인 것 같습니다. 고향을 찾아온 저희 형제들이 부모님과 말씀을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됐습니다. 방이 모자라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저는 거실에 이불 펴고 같이 자기로 했습니다.

 누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버님이 큰 방을 나오시다가 우리를 봤습니다. “그래, 잘한다. 참 보기 좋다.”라고 거듭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겠습니까. 아버님의 여린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낸 날이었죠.    

     

 

 솔개 닮은 새 한 마리가 높이 제 자리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푸덕이는 날개 짓이 차갑다 하기로 서니 오는 봄 더디기야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했지만 아버님 곁에 앉은 묘역, 애잔한 허무만이 가득합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이듬해,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우리나라 다녀간 것을 기억하시죠. 그분도 올해 1월 열반에 들었다고 하네요. 워낙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크다 보니 뉴욕타임스가 나서서 그의 어록 중에서 하나를 뽑았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단지 개념(notions) 일뿐이다.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들은 실제(real)가 아니다.”

 대단한 반전이 아닐까요. 신이 거대 담론인 사후세계를 인간에게는 봉인한 것도 신의 한 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오만 혹은 교만하지 않게 하고서, 수행자에게나 얼핏 귀띔해 주는 게 아닌지.

     

 아버님은 만년에 치매 증세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희들이 챙겼다 해도 충분하기야 하겠습니까. 보건소에 들려 치매 진행 상태를 진료받고 왔는데, 다음날 동네 약국에서 치매 약을 달라며 난동을 피운 이야기, 뒤늦게 들었답니다. 아버님의 마지막 절규인 것 같아 지금도 속상하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며칠 후면 저희 형제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으로 우리 곁에 있었음을 기억이 마르지 않는 한 새기고 또 새길 것입니다.

     

오늘 같은 날 오는 봄 달갑기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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