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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Jul 19. 2022

아리랑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는 전축이 있었다. 신기한 LP판도 처음 보았다. 황성 옛터, 동백꽃 아가씨등등 그중에서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노래에 웃음보를 터트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이니 대중가요 의미를 제대로 알겠는가. 아버님이 틀면 어머님이 손뼉 치며 합창을 했고, 나도 옆에 앉아 흥얼거렸다. 까만 옻칠에 자개가 고왔던 우리 집 가보(家寶)였으니. 학교 친구들에게 대놓고 자랑을 못하지만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회사원 시절 광명시에 살 때가 있었다. 예전 추억이 자주 떠올라 큰맘 먹고 대리점에서 오디오 컴포넌트를 구입했다. 양옆 2 Way 대형 스피커에 뿌듯함마저 느꼈다.

 예닐곱 장의 LP판 가운데 김영임의 회심곡도 있었다. 토요일 오후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그 음반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형이 찬찬히 음미해 보라며 권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가 교리에 사설을 붙인 곡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종교적 색채와 꽹과리 치는 소리가 굿 놀이 같아 한동안 듣지 않았다. 전 곡을 다 듣고 나서 2<부모님 은혜> 부분만 다시 들어보았다.

     

석 달 만에 피를 모으고/ 여섯 달 만에 육신이 생겨

열 달 만삭을 고이 채워/ 이내 육신이 탄생을 하니

...

그 부모가 우릴 길러낼 제/ 어떤 공력 드렸을까

     

 공력을 조목조목 나열하는데,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부분에 이르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풀 먹인 삼베 적삼이 스치듯 까칠까칠한 음색은 울적한 심사를 가중시켰다. 술자리를 대충 치우고 거실 유리창 앞에 한동안 서성거렸다.

     

     

 부모님이 연로하시어 여러 의료 및 요양시설 출입이 잦았다. 얼마 전 어머님이 위중한 관계로 중환자실에 계실 때다. 6인실에는 모두 팔구십 세의 노인들이었다. 침상마다 나는 모니터 비프음, 주렁주렁 매달린 온갖 주사액이 환자들 혈관에 꽂혀 있었다.

     

 간호사실에 들렀다 왔는데 무슨 소리가 났다. 켜놓은 TV는 아니었다. 어머님 곁에 앉아 출입문 쪽을 바라보니 옆 침상의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상반신을 비스듬히 일으킨 상태였다. 굽어버린 무릎, 허공을 안듯이 두 팔 벌린 모습이 높은 곳에서 뒤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실낱같은 소리가 그쪽에서 들려왔다.

     

 오른쪽 귀 옆 베개에 휴대폰이 놓여있었다. 가느다란 소리는 익숙한 우리 민요였다. 누가, 왜 가져다 놨을까? 간병인 아니면 문병 온 며느리나 딸이? 이별을 앞둔 엄마를 위해 애창곡 들려드리려는 살가운 마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딸이 아닐는지.

                      

 구순이 넘은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몸 밑천으로 살아온 고달픔이 느껴졌다. 세월에 그을린 검버섯이 온몸에 내려앉고 더 이상 쇠약해질 수 없는 몸이었다.

 뜻밖에 굳었던 양 팔이 민달팽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훠이훠이 휘저으려는 듯. 허공을 향해 뻐끔 뜬 눈은 미동조차 없는데, 바싹 말라버린 목젖에선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숨이 막혔다. 인생사, 부질없고 덧없음을 체화된 몸놀림으로 풀어내려는 것 같아 숙연해졌다. 휴대폰을 놓은 이의 마음, 마지막일 수도 있는 춤사위 그리고 가사의 전달력이 한데 어우러졌으니. 내 부모 아니지만, 시울이 떨렸다.   

 

 이 민요가 이토록 애잔하고 한스러운 노래였던가. 미처 몰랐다. 세상에서 정명(定命)을 다하고 낡고 바스러져 심연으로 가라앉기 전, 잠시 붙들 수 있는 것. 우리 가락이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소리에도 지문이 있다고 했다. 지라에서 용틀임하듯이 까칠하게 긁어 올리는 목소리. ‘회심곡을 부르던 국악인 김영임의  아리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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