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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Jul 11. 2021

왜 불러, 등골브레이커

아미 엄마가 부르는 작은 수필1

 “왜~ 불러! 왜~ 불러!”

 어? 송창식 아저씨? 아니, 이제 할아버지신가? 방탄소년단의 뽀송뽀송한 얼굴, 근사한 몸짓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남편 없이 아이 셋만 데리고 떠난 휴가길이었다. 여름에 일이 많은 남편은 저녁때 따라오마고 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큰딸은 조수석에서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고 아직 초등생인 작은딸과 막내아들은 뒷좌석에서 휴대폰 게임에 열중했다. 가는 도중에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다시 출발하니 길이 슬슬 막히기 시작했다.

 잠이 깬 큰딸이 늘 끼고 다니던 이어폰을 뺐다. 노래 좀 틀어보라니까 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주르륵 나오자 활기차게 떠들기 시작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랩을 읊어대는데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가사가 보이는 음악 앱을 깔아놓고 들어봤던 거였다. 한동안 ‘아미 된 지 00일’이라는 카운팅을 프로필에 올렸던 아이는 여전히 방탄에 푹 빠져 산다. 

 좋은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이것저것 눌러대는 통에 소년들의 노래와 랩이 정신없이 흘러나왔다. 충실한 아미답게 방탄 탄생일(?)부터 이런저런 설명을 줄기차게 읊어대던 딸아이 목소리 사이로 어딘지 익숙한 멜로디 “왜~ 불러”가 툭 튀어나왔다. <등골브레이커>의 오프닝이었다.

 등골브레이커는 부모가 등골이 휠 정도로 자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현실이 나은 신조어다.

 부모님께 그만큼의 부담을 지우는 사람에게 붙는 말이지만 등골이 휠 정도로 비싼 물건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수십짜리 신발에/ 또 수백짜리 패딩/ 수십짜리 시계에/ 또 으스대지 괜히

방탄소년단 <등골브레이커> 중


 어떤 게 ‘등골브레이커’인지 예시를 들어놓은 가사를 보니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내 귀에 선명하게 꽂힌 송창식 아저씨의 “왜 불러”는 패딩을 사달라기 위해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아닐까?

 아이들이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 엄마를 부르는 특유의 톤이 있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퉁명스레 “왜 불러” 하고 대답하곤 했다.

 아이가 셋인 데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라 늘 부족한 것투성이다. 아이들이 과한 것을 조르지 않아도 등골이 휘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한참 롱패딩이 유행하던 겨울을 큰딸은 사촌에게 물려받은 짧은 패딩으로 버텼다. 그다음 해 겨울, 옷이 작아지기도 했고 매서운 추위에 걱정도 되어 롱패딩을 사주었다. 노랫말처럼 수백짜리 패딩은 아니었지만 가볍게 사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니 옷을 침만 꼴깍이며 바라보던 작은딸과 멋모르던 막내아들은 다시 그다음 겨울에야 최저가 검색에 걸린 롱패딩을 얻어 입을 수 있었다.


 어쨌든 그들의 시원스러운 랩을 듣고 있자니 속이 후련했다.


 가득 찬 패딩 마냥/ 욕심이 계속 차/ 휘어지는 부모/ 등골을 봐도 넌 매몰차/ 친구는 다 있다고/ 졸라대니 안 사줄 수도 없다고/ Ayo baby 철딱서니/ 없게 굴지 말어/ 그깟 패딩 안 입는다고/ 얼어 죽진 않어/ 패딩 안에 거위털을/ 채우기 전에/ 니 머릿속 개념을/ 채우길 늦기 전에 

방탄소년단 <등골브레이커> 중


 이런 말을 내가, 부모들이 해봐야 꼰대 소리나 들을 게 분명한데 ‘방탄소년단’이라는 스타 가수가 해 주니 멋지고 고맙지 않은가 말이다. 큰딸 성향으로 봐선 메이커 옷 사 달라 소리를 한 번쯤은 할 법도 한데 안 하는걸 보면 이 노래의 영향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부모 등골 휘는지 뻔히 알면서도 조르는 아이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래 내 패딩 더럽게/ 비싸고 더럽게 안 예뻐/ But I say 너무 갖고/ 싶은데 어떡해/ 나보다 못 사는/ 친구들도 다 가졌는데/ And I say 은따 되기/ 싫음 살 수밖에/ 이 나이 때쯤이면/ 원래 다들 좀 그러잖니

방탄소년단 <등골브레이커> 중


 이런 상황도 알고는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다는 것이 평범한 부모들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애꿎은 등골만 죽어나는 게지. 그나마 근본적으로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표를 잘하고 사회정책에 관심을 가지자는 목소리가 자주 나와 반갑다.


 잘생기고 인기 많은 소년들이 부모의 잔소리까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신해 주는 것이 엄마 마음에 무척 대견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Come Back Home>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던 1995년도에는 실제로 가출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있었다. 대중음악이 가진 힘이 선한 영향력을 미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방탄이 리메이크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2014년 방탄소년단이 <등골 브레이커>를 발표했다. 이 노래로 노스페00 같은 고가 패딩 불매운동이 벌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그랬더라면 대중음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사건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너넨 요즘 참 배불렀지/ 남의 인생 참견이/ 좀 주제넘지/ 속 빈 강정뿐인/ 말들을 왜 계속해/ 내가 받은/ 돈 내가 쓰겠다는데/ 5천만의 취향을/ 다 니들처럼 맞춰야/ 만족할 사람들이지/ 제발 너나 잘 사셔/ 니 인생 말이여/ 니가 나면 말 안 하겠어/ 

방탄소년단 <등골브레이커> 중


 <등골브레이커>라 야단치는 말에 반박할 내용까지 저렇게 가사에 넣었다. 저런 식으로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참견하지 말라는데 한마디 더 보태봐야 주제넘은 꼰대가 될 뿐이다. 게다가 ‘난 내 할 일은 잘해/ 부모님의 등골 안 부셔/ 진짜 브레이커는 나이 먹고 아직도 방구석인 너’라고 당당히 밝힌다. 등골이 휘게 먹이고 입혀 졸업시켜도 취업뒷바라지가 남아있고 결혼자금까지 보태자면 노후자금은 생각하기도 힘들다. 결혼 후에도 맞벌이 자녀를 위해 손자손녀를 돌봐야 하는 몫까지 남으니 어찌 보면 패딩이나 요구할 때가 가장 약한 등골브레이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하면 저속하다 할까 봐 차마 대놓고 못 하는 말, “빌어먹을 등골브레이커!”까지 마지막 랩으로 후련하게 쏟아주니 당분간 방탄 예찬은 계속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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