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
2017년 1월 <한국산문> 신인 수필 당선작
아침에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 앞에 나서면 매일 겪게 되는 작은 갈등이 있다. 무단횡단을 해서 버스정류장 앞으로 직진할 것인가, 사거리까지 걸어가서 초록 불을 기다려 디귿자 코스로 돌아갈 것인가. 직진하면 아낄 수 있는 시간은 3분에서 5분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을 벌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 모르겠으나 초록 불을 기다리는 동안 타야하는 버스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5분이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
아직은 순진하고 순수한 초등학생 딸들은 외할머니가 그 길을 무단횡단 하실 때마다 내게 이르곤 한다. 출근시간에 무단횡단하는 나를 아이들은 본 적이 없었던지라 엄마도 그러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면 나는 아닌 척하며 경전철 공사 중이라 위험하니 다리가 좀 아파도 돌아다니시라고 친정엄마를 설득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내게 절대 설득당하지 않을 거다. 이 동네에서 40여년을 사시는 동안 늘 무단횡단으로 그 길을 다니신 분이니 말이다. 딸들에게는 외할머니께서 무릎이 아프셔 그러니 너희가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며 넘어가지만 엄마는 젊은 시절 무단 횡단을 했더니 경찰이 집까지 쫓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쫓아온 경찰은 경고만 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무용담처럼 말씀하셨다. 어릴 때는 엄마의 무단횡단이 참 싫었는데 나도 어느 날부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당하는 일들이 전생의 업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현재의 삶이 괴로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죄를 짓는다면 내세, 즉 다음 생에서 그 값을 치른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면서 그 인과응보도 빠르게 도달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큰아이가 두세 살 무렵 시댁에 갔을 때 한 살 많은 조카아이가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우는 것이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는 그런 적이 없었던 터라 쟤는 이유 없이 왜 저렇게 울까, 조금 짜증이 났었다. 그러더니 둘째 딸이 돌 지날 때까지 밤마다 울어서 매일 업고 서서 자다시피 했다. 내가 지은 생각의 업이 불과 몇 년 만에 내게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 키우는 사람은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 놓고도 인간은 망각의 존재인지라 큰 딸 친구 동생아이가 양말을 똑바로 신겨주지 않으면 짜증을 부려서 아침마다 힘들다는 얘기에 ‘참 별난 아이네.’ 생각했고, 막내아들이 양말 윗부분 그림이 조금이라도 발바닥 쪽으로 내려가면 신경질을 부려 또 한 번 반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 넓은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님 세대, 즉 전쟁을 겪고 가난에 허덕이던 그분들은 ‘잘 살아 보세.’가 최대의 고민이자 목표였다. 조금 찬찬히 이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나 빨리 목표에 도달하려다 보니 여기저기 허술함이 드러났다. 다리가 끊어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는 여기저기 보수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못 먹을 먹을거리와 못 써먹을 물건들이 천지에 넘쳐나는 것은 덤이다. 그에 대한 대가를 우리가, 또 우리 아이들이 치르고 있다.
양말을 반듯하게 신경 써서 신겨주고 나면 끝나는 정도면 좋겠지만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그 정도가 아니다. 다른 나라가 몇 백 년에 걸쳐 이루는 성장을 몇 십 년 만에 이뤄냈지만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무단횡단이 있었다.
지금 유행하는 한 드라마에서 88년도를 그리고 있다. 그 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데모하는 대학생들이 참 싫었다. 우리 집은 여대 옆이고, 4.19 국립묘지 근처였던지라 최루탄 가스의 매운 맛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들이 외치는 것들이 뭐였는지 몰랐으니까... 그 전에도,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대학생들은 끊임없이 기성세대들을 향해 뭔가를 외치고 있다. 그 뭔가는 우리 딸들이 할머니의 무단횡단을 엄마에게 이르고 시정을 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뭘 어떻게 시정해야 하는지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안다. 그렇지만 빠른 길, 익숙하고 늘 다니던 길이기에 고치기 쉽지 않고 어쩌면 고칠 생각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가 혹시라도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청춘들은 나라에 큰 사고가 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큰 사고가 많이 나기도 했고.
친정엄마가 입원하셨을 때 서울대병원에 가던 중, 대학로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보았다. 전단지를 나눠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결의에 가득 찬 눈빛을 가진 그들을 보며 늘 가던 길로 가는 내가 부끄러웠다. 세 아이의 엄마이고 그저 아줌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그들이 기성세대가 이루어놓은 지저분한 세상을 찬찬히 청소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정치인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인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청춘의 몫을 하는 동안 나는 엄마의 몫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돌아가더라도 정직한 길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려면 내 아이들부터 그렇게 키워야 한다. 내 아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으나 크든 작든 이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 똑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다던 어린이집 원장님의 한마디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아이들이 보든 안보든 무단횡단은 이제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