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작은딸, 막내아들과 소아과에 가는 중이었다. 지나가며 헬스클럽 선간판 문구를 읽던 작은 딸이 물었다.
“엄마, 다이어트가 운동이야?”
나는 아들이 차가 오는 방향으로 뛰어갈까 봐 정신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정성껏 대답했다.
“아니. 다이어트는 살 빼는 거야. 다이어트를 하려고 운동하기도 하고, 건강해지려고 운동하거나, 그냥 좋아서도 하지. 다이어트가 운동은 아니야. 다이어트하려면 운동도 하지만, 음식조절을 하거나, 뭐 다른 방법도 많이 있어.”
작은딸은 어쩐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응. 그럼 엄마는 건강해져야 하니까 운동해야지?”
문득 뚱뚱이 삼진 사건이 생각났다.
“음… 엄마가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살도 빼서 날씬해졌으면 좋겠어?”
어쩐지 좀 더 자신감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
왠지 반항하고 싶은 못난 엄마는 일단 파울을 유도해 보기로 했다.
“엄마도 운동하고 싶긴 한데, 엄마는 돈 벌러 가야 하잖아. 집에 오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은지랑 언니랑 희섭이랑 놀아줘야 하고. 운동할 시간이 없네. 어떡하지?”
“그럼 훌라후프랑 줄넘기하면 되잖아. 내가 엄마한테 훌라후프 할 시간이야. 하고 알려주면 엄마가 잠깐 일하는 거 쉬고 운동 먼저 하면 돼. 그리고 다 하면 밥하고. 또 줄넘기할 시간이야, 하면 줄넘기하고. 또 설거지하고, 어때?”
대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뜻 뿌듯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작은딸.
엄마가 졌다, 그래. 웃어나 주자.
“그럼 되겠네. 아하하.”
후련한 듯, 기운찬 발걸음으로 아들을 따라 뛰는 작은 딸. 헛스윙해주는 남편도 없이 또 삼진이었다.
나이 마흔에 아홉 살, 일곱 살, 세 살. 세 아이의 엄마로 몸매에 큰 불만은 없는데. 강제 다이어트를 해야 할 판이었다.
모유수유로 몸매를 되찾았다는 날씬 엄마들이 TV 속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지.’ ‘나도 아이 셋 모두 완전 모유수유 했다고.’ ‘비쩍 마른 이쑤시개보단 튼실한 통나무가 좋아.’라고 해봐야 연이은 삼진에 이미 난 패배자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 다이어트’를 할 자신이 없었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바싹 마른 몸매가 정답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까지 물들였다. 그래서 내 아이들만이라도 이런 물에서 꺼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다이어트 대신 아이들을 세뇌했다. ‘엄만 뚱뚱한 게 아니야.’ ‘아기 낳은 엄마가 이 정도면 표준인 거야.’ ‘희섭이도 엄마 곰은 날씬하다고 하잖아. 애들은 거짓말 못 하는데.’ 등등….
큰딸은 이렇게 양보했다.
“엄마, 뚱…뚱…하지는 않아.”
작은딸은 아직도 회피했다.
“엄마, 머리 길고 파마하니까 예뻐.”
아이들의 눈에는 아직 날씬한 긴 머리 처자들이 예쁘게 보이고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 보다.
이쯤 되면 선택해야 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을 마지막으로 운동과 후련하게 작별한 나. 수영은 좋지만 추위는 싫어서 수영강습도 늘 자유형, 배영에서 도돌이표 하던 나. 예쁘고 날씬한 엄마를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다이어트에 도전할 것인가. 외모보다는 내면을 가꿔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 지금의 뱃살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
답이야 뻔했다. 건강을 위해라도 억지가 아닌 ‘스스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했다.
걸음이 느린 나는 바쁜 아침, 시간을 줄여보겠다고 버스를 타곤 했다. 회사까지 걸어가면 세 정거장 정도이지만 내 걸음으론 30분도 더 걸렸다. 빠르게 걸어야 운동이 된다기에 그 30분의 걸음을 15분으로 줄여 걸었다. 부족하나마 운동이 됐다. 다이어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예쁜 엄마로 보일 수 없다면 노력하는 엄마로라도 보여야겠기에.
사실 하루 15분 걷는다고 날씬해지진 않을 거다. 다이어트가 된다 해도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의 내가 아이돌 같은 외모가 될 리 만무하니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미의 기준이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불뚝 나온 배가 부의 상징이었고, 달덩이 같은 얼굴이 부잣집 맏며느릿감의 기준이었으니. 먹을 게 지천인 지금은 날씬한 외모가 자기절제와 관리의 상징이 된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들 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인데, 나도 모르게 예쁜 게 좋은 거라고 강조한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엄마의 다이어트와 운동은 외모와 상관없다는 것을 말해줘야겠다. 다리는 짧아도, 뱃살은 늘어졌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음을. 그래서 엄마는 당당하게 걷고 있음을 알려줘야겠다. 딸들이 세상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엄마를 바라보게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