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화 Jul 11. 2021

뚱뚱이 삼진사건

2018.동인지 <열일곱, 그들의 봄> 수록


  “엄마, 뚱뚱해. 완전.”

  저녁 잘 먹여놨더니 큰딸이 난데없이 돌직구를 날렸다.

  “엄마가 뭐가 뚱뚱해?”

  남편이 슬쩍 방망이를 휘둘렀다.

  “내가 아는 친구 엄마 중에 제일 뚱뚱해.”

  헛스윙. 구원 타자를 불렀다.

  “은지야, 엄마 뚱뚱하니?”

  “아니, 엄마 예뻐.”

  껌딱지 작은딸, 매달고 다닌 보람이 있다. 흐뭇해하는 순간, 다시 직구를 날리는 큰딸.

  “예쁘냐고 물었냐? 뚱뚱하냐고 물었지. 엄마 뚱뚱해.”

  아직 기회가 한번 남았으니, 내 차례다.

  “네 친구 엄마 중에 나보다 몸무게 더 나가는 엄마도 있어.”

  “아니, 내가 보기엔 엄마 몸무게가 제일 많이 나가.”

  결국, 삼진아웃이었다. 제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얼마 뒤 작은딸, 막내아들과 소아과에 가는 중이었다. 지나가며 헬스클럽 선간판 문구를 읽던 작은 딸이 물었다.

  “엄마, 다이어트가 운동이야?”

  나는 아들이 차가 오는 방향으로 뛰어갈까 봐 정신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정성껏 대답했다.

  “아니. 다이어트는 살 빼는 거야. 다이어트를 하려고 운동하기도 하고, 건강해지려고 운동하거나, 그냥 좋아서도 하지. 다이어트가 운동은 아니야. 다이어트하려면 운동도 하지만, 음식조절을 하거나, 뭐 다른 방법도 많이 있어.”

  작은딸은 어쩐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응. 그럼 엄마는 건강해져야 하니까 운동해야지?”

  문득 뚱뚱이 삼진 사건이 생각났다.

  “음… 엄마가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살도 빼서 날씬해졌으면 좋겠어?”

  어쩐지 좀 더 자신감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

  왠지 반항하고 싶은 못난 엄마는 일단 파울을 유도해 보기로 했다.

  “엄마도 운동하고 싶긴 한데, 엄마는 돈 벌러 가야 하잖아. 집에 오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은지랑 언니랑 희섭이랑 놀아줘야 하고. 운동할 시간이 없네. 어떡하지?”

  “그럼 훌라후프랑 줄넘기하면 되잖아. 내가 엄마한테 훌라후프 할 시간이야. 하고 알려주면 엄마가 잠깐 일하는 거 쉬고 운동 먼저 하면 돼. 그리고 다 하면 밥하고. 또 줄넘기할 시간이야, 하면 줄넘기하고. 또 설거지하고, 어때?”

  대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뜻 뿌듯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작은딸.

  엄마가 졌다, 그래. 웃어나 주자.

  “그럼 되겠네. 아하하.”

  후련한 듯, 기운찬 발걸음으로 아들을 따라 뛰는 작은 딸. 헛스윙해주는 남편도 없이 또 삼진이었다.

  나이 마흔에 아홉 살, 일곱 살, 세 살. 세 아이의 엄마로 몸매에 큰 불만은 없는데. 강제 다이어트를 해야 할 판이었다.

  모유수유로 몸매를 되찾았다는 날씬 엄마들이 TV 속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지.’ ‘나도 아이 셋 모두 완전 모유수유 했다고.’ ‘비쩍 마른 이쑤시개보단 튼실한 통나무가 좋아.’라고 해봐야 연이은 삼진에 이미 난 패배자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 다이어트’를 할 자신이 없었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바싹 마른 몸매가 정답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까지 물들였다. 그래서 내 아이들만이라도 이런 물에서 꺼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다이어트 대신 아이들을 세뇌했다. ‘엄만 뚱뚱한 게 아니야.’ ‘아기 낳은 엄마가 이 정도면 표준인 거야.’ ‘희섭이도 엄마 곰은 날씬하다고 하잖아. 애들은 거짓말 못 하는데.’ 등등….

  큰딸은 이렇게 양보했다.

  “엄마, 뚱…뚱…하지는 않아.”

  작은딸은 아직도 회피했다.

  “엄마, 머리 길고 파마하니까 예뻐.”

  아이들의 눈에는 아직 날씬한 긴 머리 처자들이 예쁘게 보이고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 보다.

  이쯤 되면 선택해야 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을 마지막으로 운동과 후련하게 작별한 나. 수영은 좋지만 추위는 싫어서 수영강습도 늘 자유형, 배영에서 도돌이표 하던 나. 예쁘고 날씬한 엄마를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다이어트에 도전할 것인가. 외모보다는 내면을 가꿔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 지금의 뱃살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

  답이야 뻔했다. 건강을 위해라도 억지가 아닌 ‘스스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했다.

  걸음이 느린 나는 바쁜 아침, 시간을 줄여보겠다고 버스를 타곤 했다. 회사까지 걸어가면 세 정거장 정도이지만 내 걸음으론 30분도 더 걸렸다. 빠르게 걸어야 운동이 된다기에 그 30분의 걸음을 15분으로 줄여 걸었다. 부족하나마 운동이 됐다. 다이어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예쁜 엄마로 보일 수 없다면 노력하는 엄마로라도 보여야겠기에.

  사실 하루 15분 걷는다고 날씬해지진 않을 거다. 다이어트가 된다 해도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의 내가 아이돌 같은 외모가 될 리 만무하니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미의 기준이라는 건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불뚝 나온 배가 부의 상징이었고, 달덩이 같은 얼굴이 부잣집 맏며느릿감의 기준이었으니. 먹을 게 지천인 지금은 날씬한 외모가 자기절제와 관리의 상징이 된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들 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인데, 나도 모르게 예쁜 게 좋은 거라고 강조한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엄마의 다이어트와 운동은 외모와 상관없다는 것을 말해줘야겠다. 다리는 짧아도, 뱃살은 늘어졌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음을. 그래서 엄마는 당당하게 걷고 있음을 알려줘야겠다. 딸들이 세상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엄마를 바라보게 될 때까지.


https://youtu.be/GciAyYtM7ME


작가의 이전글 무단횡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