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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Apr 19. 2024

너무 아무 얘기여서 제목을 까먹었다

2024.4.19

  본투비 껌딱지인 작은딸과 달리 큰딸은 본투비 자기 주도였다. 모유 먹일 때도 배부르면 휙 하고 등 돌리고 혼자 자는 아기에게 서운할 지경이었고, 말을 시작한 후로 가장 많이 한 말은 “내가 (할래)”였다. 


  김창옥 쇼에서 김창옥이 그랬다. 사춘기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지나가면 갱년기를 심하게 치르는 경우가 있다고. 절대적으로 경험해야 할 시간이 정해진 걸까?

  아기 때 껌딱지 노릇을 안 했던 큰딸은 고3인 이제야 그 시간을 채우는 중이다. 혼자 공부가 잘 안 되니 엄마 할 일을 들고 들어와서 자기 방에서 같이해달란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다섯 식구 아침을 챙기고 7시에 고1, 고3 두 딸의 셔틀버스 노릇을 하고 들어와 초딩 아들을 등교시킨 뒤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나면 12시다. 카페에 출근해서는 손님 있을 땐 손님치레로, 없을 땐 알바로 편집 작업하느라 한가할 틈이 별로 없다. 그러고 퇴근하면 그저 쉬고 싶지만 늘 혼자 동동거리던 큰딸이 내민 손을 차마 내칠 순 없다. 글쓰기를 하거나 책을 읽지만, 피곤해서 효율은 별로다.

  그러다 잠시 쉬는 시간이나 잘 시간이 다가오면 큰딸은 아무 얘기나 해달라고 한다. 엄마 얘기를 듣는 게 좋은 건지, 그저 껌딱지 시간을 늘리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잠들 때까지 끝도 없이 동화책을 읽어 주던 그때처럼 아무 얘기나 주절거린다. 

  브런치에서 일기 쓰기를 시작한 얘기를 하며 그날 쓴 일기 제목을 알려주려다 “너무 아무 얘기여서 제목을 까먹었다.”라고 했다. 휴대 전화를 뒤져 제목을 알려주니, 「살짜쿵 넘의 일기 보는 시간」이나 「매일매일 쓴다는 것」보다 「너무 아무 얘기여서 제목을 까먹었다」라는 제목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필을 쓰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제가 있는 글’이다. 그리고 소소한 소재, 가족에 관한 일상적인 이야기 같은 것을 쓸 때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정보라도 있어야 한다. 독자를 울리거나 웃기는 글이 좋다고 배웠고, 내가 쓴 에세이집을 읽고 울다가 웃다가 했다는 메시지에 기뻤다. 그런데 아무 얘기나 주절주절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쓴 얘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며 현타가 오는 것도 사실이다. 


  뭐 어쩌겠는가. 트랜드랍시고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휘둘리는 것보다 내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나름대로는 유연한 사고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감각을 조금쯤은 갖추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들의 트랜드는 따라가기 버겁다는 생각이 문득, 아주 조금 들었다.


  그리고 네가 좋다는 제목으로 내일 글을 써야겠다는 아무 얘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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