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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Apr 23. 2024

다음에는 장례식장에서 만나지 말자

2024.4.23

  몇 안 되는 친구도 아이들 키우며 먹고 사느라 만날 틈이 없었다. 이제 슬슬 육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나 싶었더니 집집이 부모님 병원 쫓아다니느라 또 틈이 없다.


  지난겨울, 친구 J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하여 H와 함께 다녀왔다. 여고 동창이라 결혼 전부터 커플 데이트를 하며 친했던 사이인데, 남편들이 바빠 우리 둘만 갔었다. 치매를 꽤 오래 앓으셨는데, 욕창이 생기면서 독한 피부과 약을 처방받았단다. 연세도 많고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 독한 약이 신장을 망가뜨려 결국 세상과 작별하신 거다. 

  제주도에서 아이 셋을 키우던 J는 혼자 남은 시아버님이 뇌수술하고 병구완을 위해 남편이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상을 치르고 아이들 방학이 끝나면 전학 절차를 마치고 이사 오기로 했단다. 장례식장에 손님이 많아 간신히 몇 마디만 나누고 헤어지며 이삿짐 정리가 끝나면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킬 틈도 없이 H 아버님의 부고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J와 함께 다녀왔다. 우린 왜 매번 장례식장에서만 보는 거냐며 씁쓸한 인사를 나눴다. H의 아버님도 오래 앓으셨고, 어머님도 암 환자라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힘든 상황이었다.

  핼쑥해진 얼굴로 집안에서조차도 거동을 못 하셨는데, 엄마까지 힘드셔서 그렇게 오래 계시는 거보단 편하게 가신 게 아닌가 얘기하는 H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딸만 넷인 집의 얼굴도 안 본다는 셋째딸로 늘 아등바등 살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이여서 오랜만에 만나도 아니, 오랜만에 만났기에 할 얘기는 끝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며 다음에는 장례식장 말고 밖에서 보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딸은 고등학교만 보내도 넘치게 가르쳤다는 인식에서 딸도 남부럽지 않게 가르쳐내야겠다는 인식이 공존하며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기 시작하던 시대에 우리는 여상을 다녔다. 다들 중학교에서 상위권이었기에 우리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이 과외를 하고 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질투하며 주판알을 튕기고 타자기를 두드렸었다. 취업을 못한 나는 혼자 이리저리 부딪치다 2년제 대학을 갔지만, J와 H는 졸업전에 취업을 했고 쉬지 않고 일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지내도 될텐데, 관성의 법칙이 ‘돈벌기 위해 일하기’에도 적용되는지 H는 알바중이고 J는 자격증 시험 준비중이다. 


  늘 힘들게 살아서 힘든 상태가 익숙하니 편안한 것으로 착각하는 거라는 김창옥 강의 내용을 들려주며 여유로움에 적응해보자했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긴 터널을 지나면 눈부신 세상이 나오겠지. 몇 년만 지나면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될 테고, 다음에는 결혼식장 말고 밖에서 보자 약속할 날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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